▲누나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김광원
여기에 내향적이고 겁이 많은 성격이 더해져 나는 누구에게나 남자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부모님은 나를 태권도에 보내신 것 같다(한국남자의 필수코스 아닌가!). 태권도를 다니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이 있었다. 바로 겨루기였다. 내 소중한 친구들과 육체적인 싸움을 해서 이겨야 했었다. 이로 인해 서열은 자연스럽게 생겨났고,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도 좋지 않은 감정이 생겼었다. 이때부터 남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던 것 같다. 태권도장을 다니면서 남자는 강해야 하며 싸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 익숙하게 학습되었다.
특히 '남중'이 정말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육체적인 체벌이 가능할 때여서 학교에서 툭하면 매로 맞았다. 쪽지시험을 쳐서 틀린 개수만큼 맞는 일은 기본이었고 지각했다고 맞고 준비물 안 가져왔다고 맞았다. 학교를 갈 때마다 '오늘은 매를 맞지 않기를' 하면서 갔던 기억이 난다. 자연스럽게 통제와 폭력에 익숙해졌다. 작은 정글 같았다. 학생간의 서열을 가리기 위한 약육강식의 싸움이 매일같이 일어났고 괴롭힘과 왕따를 당하는 학생을 봐야했다. 나는 그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조용히 지내기 그리고 착한사람이 되기였다. 서열의 아래를 자처하면서 남성의 질서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의 사회를 학습하였다. 남자다움이 당연한 곳에서 나는 남자답지 못해 고통받았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냈다.
페미니즘을 접한 뒤, 알게 된 '진짜 하고싶은 것'나는 오래전부터 성찰과 반성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부족해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를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으로 고쳐나갔다. 그중에 나의 남자답지 못한 부분을 가장 부족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고치려고 했었다. 그 과정은 언제나 나를 부정하고 혐오함으로써 이뤄졌다. 하지만 고쳐지지 않는 자아가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개성있는 사람, 특이한 사람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였다.
남자다움의 기준에 잘 맞지 않았던 나는 페미니즘을 알게 되고 그것이 나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남성성은 만들어진 것이고 이를 사회화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를 억압하였던 틀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나에 대한 긍정이 생기면서 나 자신을 부정하거나 합리화하는 일을 그만할 수 있었고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것과 좋아했던 것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
화장은 페미니즘을 접하기 전부터 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누나들의 화장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고 전공분야와 관련이 있어 관심이 있었다. 화장품에 관심이 있는 것과 화장을 하는 것은 많이 다른데 나는 왠지 모르게 후자에 좀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화장을 하기 전엔 화장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한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리고 어렵지 않고 쉽게 할 수 있을 거라는 편견도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화장을 하기 시작한 뒤 화장품의 종류가 엄청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돈을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화장하는 건 엄청난 손기술과 시간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화장품과 화장하는 방법을 검색하고 공부까지 한 적이 있었다.
페미니즘을 접하게 전 화장은 대개 남자 연예인 화장법 혹은 자연스러운 남자화장법 등을 따른 것이었다. 외모를 잘 가꾸는 남자가 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생각을 바꿔놓았다. 남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내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이 더 중요했고, 화장한 내 모습이 정말 좋았다. 그러다보니 점점 화장이 진해졌고 다양한 화장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거리를 거닐다 눈총을 자주 받았다. 그렇지만 나에게 해코지하거나 시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남성이어서 누리는 권력을 직접 느끼는 계기였다.
평상시 나와 화장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한 페미니스트 동지가 있었다. 그 동지가 작년 퀴어문화축제(퀴어퍼레이드)에서 드래그 퀸(Drag queen, 옷차림, 행동 등을 통해 과장된 여성성을 연기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게이 남성이나 게이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지만 게이 남성이 아닌 다른 성정체성을 가진 드래그 퀸들 역시 존재한다)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