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안녕... 체육복 맘 편히 갈아입는 학생들

[bulgom의 혁신교육 현장 ②] 서울 금천 혁신교육지구의 색다른 교과서 만들기, 전국 최초의 실험'소통과 나눔' 서울 녹천중... 세심한 공간 구성 돋보여

등록 2017.03.30 22:18수정 2017.05.0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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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방에 들어섰더니 학생 상담이 한창이었다.
소나방에 들어섰더니 학생 상담이 한창이었다. 윤근혁

카페에 들어섰다. 나무 내음이 가득했다. '케이팝'도 흘러나왔다. 고급스러운 조명이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올해 3월 2일 문을 연 '소나방'(소통과 나눔방)의 모습이다.

'교사와 학생' 눈높이 같게 만든 소나방

지난 3월 27일 오후 2시 40분쯤, 서울 녹천중 본관 오른편 끝에 있는 교실 한 칸 크기의 공간에 들어섰다. 이곳이 바로 소나방이다.

이 학교 3학년 한 학생이 담임교사와 상담을 하고 있었다. 탁자를 가운데 두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눈높이는 같았다. 여전히 음악이 흘러나왔다.

일반 학교에서 잘못한 학생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이 교무실이다. 교사 옆에 서서 두 손을 모아야 하는 아이. 이를 쳐다보는 수십 개의 눈총. 학생 처지에서 보면 말 그대로 '망신살 뻗치는 일'이다. 교실도 마찬가지다. 교무실에서는 선생님들의 눈총을 받아야 하지만, 교실에서는 친구들의 눈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녹천중은 달랐다. 학생과 교사가 카페에서 만나 눈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마주 이야기'가 가능한 환경이 된 것이다.

학생과 20여 분간 대화를 나눈 담임교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학생과 상담이 잘 되었느냐"고 물어봤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분위기가 카페 같아서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눴어요. 말하기를 꺼리는 아이들도 여기에 오면 자연스럽게 입을 열어요."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학교 남정란 교감이 커피를 내려 컵에 담았다. 한 잔 마셔보니 원두커피였다. 남 교감은 말했다.


"학기 초 학부모 상담 기간에 많은 담임 선생님들이 이곳에서 학부모와 상담을 했어요. 한 학부모가 단톡방(단체 카카오톡방)에 소나방 사진을 올렸다고 해요. 그랬더니 벌써 입소문을 타고 카페에서 상담하겠다는 학부모들이 늘어났어요."

남 교감은 "학부모 동아리 활동하시는 분들이 학교 앞 커피숍에서 모이셨는데 이제는 이곳에서 모임을 한다"고 덧붙였다.

 손원석 녹천중 교장이 소나방을 만든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손원석 녹천중 교장이 소나방을 만든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근혁

소나방은 상담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카페이다 보니 소통과 나눔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학생 상담은 물론 교원학습공동체 활동과 학부모 동아리 활동도 이곳에서 한다. 36명의 교원이 참여하는 교무회의도 이곳에서 벌인다.

소나방을 만드는 데는 3000만 원이 들었다.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학부모와 학부모가 탁 터놓고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 적지 않은 돈을 쓴 것이다. 남는 교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돈을 아끼려고 애쓴 흔적도 보인다. 이 학교 손원석 교장은 직접 설계를 맡았다. 충무로 카페가구 도매점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의자를 싸게 산 사람도 손 교장이었다. 100만 원을 아끼기 위해 바닥 코팅 작업을 한 사람도 바로 그였다. 봄방학 기간 3일 동안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고 한다.

"소통을 위한 소나방, 만들고 보니 좋네"

지난해 9월 공모교장으로 이 학교에 온 손 교장은 다음처럼 말한다.

"사실 소나방을 만들기 전에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다른 곳에 돈을 써도 되는데 소나방을 꼭 만들어야 하나 하는 고민.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통이 되어야 교육도 되는 것인데, 이것을 이룰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녹천중에 새로 생긴 소나방은 이 학교를 푸르게 만드는 소나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센 비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학교의 우산이 되는 그 소나무 말이다.

 녹천중학교에 새로 생긴 학생 탈의실.
녹천중학교에 새로 생긴 학생 탈의실. 윤근혁

서울 녹천중 본관 3, 4층 복도 양끝엔 파란색 작은 방 4개가 생겼다. 지난 3월 2일 문을 연 이 방의 이름은 바로 탈의실이다.

지난해까지 이 학교 남학생 133명은 체육시간을 앞두고 보따리를 든 채 화장실로 뛰어갔다. 일주일에 3번 든 체육시간마다 화장실은 북새통이었다. 체육복을 갈아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378명의 여학생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누가 볼세라 교실에서 체육복을 남몰래 갈아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고생은 끝났다. 이 학교가 1000만 원을 들여 탈의실을 만든 덕분이다. 복도 양끝을 활용했기 때문에 빈 교실도 필요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이 방에 들어가 있을 때는 감지기가 작동해 문밖에 달린 전등이 켜진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다.

3학년 남학생 탈의실 입구엔 다음과 같은 안도현의 시가 적혀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 <서울교육소식>에도 실렸습니다
#녹천중 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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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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