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달 입구해외 이주노동자가 많은 끈달 입구-환영 푯말
고기복
끈달(Kendal)은 중부 자바 주도인 스마랑과 인접하고 있는 도시다. 끈달 군 소재지에서 승용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쯔삐링(Cepiring)은 '한 집 건너 한 사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주노동자가 많은 마을이다.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을 자랑하는 전통무술 펜칵 실랏(Pencat Silat)에서 유래한 춤과 노래를 흔히 볼 수 있고, 접시에마저 재스민 향이 묻어난다 할 정도로 여유롭고 활력 넘치는 땅이다.
그곳에 담배 농사와 소 장사를 하며 열두 남매를 키운 어르신이 있다. 독실한 무슬림으로 세 명의 부인을 둔 무함마드 푸아드가 그 주인공이다. 열두 남매 중 위로부터 넷을 해외 이주노동을 떠나보냈던 그는 남들과 달리 이주노동을 떠나지 못해 안달인 젊은 사람들이 영 못마땅하다. 어린 자식들이 부모 품을 떠나는 거야 당연한 거지만, 해외에까지 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답답함을 토해낼 길이 없다고 한다.
2006년 4월 26일, 무함마드는 그렇게 못마땅하게 여기던 해외 이주노동을 떠난 아들이 돌아왔지만, 그 아들을 반갑게 안을 수 없었다. 소 장사를 떠날 때면 마을 밖까지 소몰이를 돕던 싹싹하기 그지없던 아들, 누르 푸아드(Nur Fuad)는 일주일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싸늘한 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출입국 단속 피하다 사망한 이주노동자2006년 4월 18일, 부천시 도당동에 있는 한 중소기업 3층 기숙사에 인천 출입국관리사무소 소속 단속반원 12명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공장 옆 건물에 있던 주택 옥상을 통해 기숙사 3층으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출입국 직원들은 공장주 허락을 받지 않았다. 출입국이 미등록 외국인을 단속하고자 할 때는 보호명령서를 소지하고 건물주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규정은 단속 실적을 올리려는 출입국 직원들에게는 사문화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방법으로 기숙사에 진입한 출입국 직원들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11명을 붙잡고 수갑을 채웠다. 이어 신원 확인을 마치자, 기숙사를 나서기에 앞서 옷을 갈아입으라며 잠시 수갑을 풀어주었다. 그중 1999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했던 누르 푸아드가 그 틈을 이용해서 창문턱에 오른 후, 옆 건물 옥상으로 뛰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높았던 옥상 벽을 붙잡지 못하고 추락했다. 곧바로 119구급차로 순천향대 부천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장기와 대동맥파열로 다음 날 숨을 거뒀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출입국사무소는 "단속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주노동자의 사망이나 부상 등은 공무원의 귀책사유에 해당되지 않아 배상책임이 없다"며 누르의 죽음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기발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단속하며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불법체류자' 한 명의 죽음쯤은 감수해야 할 불가피한 사고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누르의 장례식장을 찾은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단속이다"라는 말로 출입국의 단속 행태를 비난했다.
장례식장에는 출입국 단속을 피하다 발목이 부러졌지만, 단속반원들이 방치하는 바람에 부상 부위가 감염되어 죽을 고비를 넘겼던 토니도 있었다. 그는 미등록자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라며 울분을 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