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연합뉴스) 전수영 기자 = 지난 2007년 3월 17일 발생한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D주상복합건물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11명의 인명을 구조한 불법체류 몽골인 4명이 2007년 4월 11일 오전 과천 정부종합청사 법무부장관실에서 김성호 장관으로부터 합법적인 국내 체류를 허가하는 1년 만기의 '특별체류허가증'을 받은뒤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좌로부터 바트델거, 곰보수레, 삼부, 바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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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빠진 사람 구하려던 사람들, 죄인 취급받다화재현장에서 사람을 구한 몽골인 의인들이 특별체류자격을 받은 지 만 9년째 되던 날, 용인 모 저수지에서 익사 사고가 발생한다. 희생자는 모처럼 회사 동료들과 함께 낚시를 갔던 중국동포였다. 술을 마시고 전화하던 한국인 관리자가 동료들이 낚은 고기를 모으려고 왔다갔다하던 피해자에게 '옆에 서 있지 말라'면서 밀쳐 발생한 사고였다.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사람이었다. '풍덩' 하고 피해자가 물에 빠졌지만, 그는 전화를 하며 그 자리를 피해 버렸다.
마침 두 사람 바로 옆에서 그 광경을 본 사람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인 하담(가명)이었다. 담배를 피우던 하담은 영문을 모른 채 물에 빠진 사람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가해자가 밀치면서 뒤로 쓰러졌기 때문에 의식을 잃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하담은 무조건 소리쳤다.
"아저씨가 물에 빠졌어요! 도와주세요!"소리를 듣자마자 인도네시아인 동료 두 명이 달려왔다. 둘은 곧바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그 사이 하담은 사장과 십여 명의 한국인들에게 중국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알렸다. 물에 뛰어든 두 사람은 여러 차례 자맥질을 하며 물에 빠진 사람을 찾아보려고 시도했다. 한 번은 축 늘어진 사고 당사자를 물 밖으로 거의 끌어내기도 했다. 누군가 손만 내밀어 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자맥질을 하며 기운이 빠진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체력이 고갈된 두 사람은 저수지 바닥에서 겨우 끌어올렸던 피해자를 뭍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다. 기운이 다한 것을 알면서도 두 사람은 몇 차례 자맥질을 더했다. 그러다가 앰뷸런스 경고음을 듣고 포기했다. 수색을 포기하고 지친 두 사람은 저수지에 있던 낚시터 좌대로 올라오려고 했다. 그때 부실한 용접으로 좌대를 지지하고 있던 철봉이 두 번씩이나 떨어져 나가는데도 역시 그들에게 손 내미는 사람이 없었다. 사고 피해자는 119 구급대에 의해 밤 11시가 넘어서야 차가운 시신으로 뭍에 올라왔다.
시신이 수습되고 경찰 조사가 시작되었다. 익사자를 한국인 관리자가 떠밀었다는 명확한 증인과 자백이 있었지만, 사건 조사는 열흘 넘게 진행되었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회사 관계자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흔히 말하는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이었다. 사고를 목격한 하담과 물속에 뛰어들었던 사람 모두 체류 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회사에서는 '불법체류자 주제에' 괜히 나섰다가 번거로운 일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사고는 한국인 관리자가 내고, 사고 수습은 이주노동자가 하려 했는데도 회사는 이주노동자들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을까만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회사 동료가 물에 빠져 죽을 수 있는 상황을 보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손 한 번만 내밀었어도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상황에서 단지 구경꾼 노릇만 했다. 사고 피해자인 중국동포를 동료로 여기지 않았다.
시신이 수습되고 중국으로 송환될 줄 알았던 유해는 한국에 묻혔다. 하담은 중국인 아저씨가 조상들과 함께 선산에 묻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중국 국적자가 한국에 묻힌 이유가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물속에 뛰어들었던 친구들도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담은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자기가 수영만 할 줄 알았어도 아저씨가 살 수 있었을 거라며 자책했다. 가슴이 두근거려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타일이나 스테인리스 접착을 위해 실리콘 작업을 할 때마다 하얀 면이 어른거리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저수지 물결이 이는 것처럼 어른거릴 때면 머리가 지끈거려서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그럴 때마다 새로 작업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인도네시아 동료들은 어깨를 툭툭 치며 웃고 넘어갔지만, 작업반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고 후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하담은 뇌 표면의 동맥이 손상되어 발생한다는 지주막하출혈로 입원해야 했다. 의사는 과로나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수 있다며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퇴원 후 말이 약간 어눌해졌음을 느꼈지만 비용 때문에 치료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담은 이미 세상을 떠난 중국아저씨를 잊는 방법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둔다고 죽음을 목격했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