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릴랜드주 럭빌에서 만난 제자(이미진, 가운데) 가족들(2007. 3.)
박도
미리 받으면 뇌물, 나중에 받으면 미담 스승에 대한 대접은 옛날에도 있었다. 서당 아이가 책 한 권 뗄 때면 그 어머니는 '책떨이'라 해 정성스레 시루떡을 만들어 시루채로 머리에 이고 서당으로 찾아갔다. 어머니는 그 시루떡으로 서당 훈장에게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답례를 했다.
그 미풍양속이 현대에 와서는 봉투라는 듣기 민망한 얘기로 크게 잘못 변질됐다.
교사는 모름지기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해 그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길 안내자다. 이것은 교사의 마땅한 책무다. 학부모의 처지에서는 자기들도 할 수 없는 일을 교사가 해준데 대해 감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감사한 마음의 표시로 '촌지(寸志)'를 전달했을 것이다.
내 교단 경험으로는 이것을 학생 재학 중에 받으면 그걸로 끝나버린다. 또 그걸 교사가 강요해서 받거나 또는 과다하게 자주 받는 경우는 뇌물로 마냥 비난을 받게 된다.
하지만 스승에 대한 그 감사한 마음을 학생이 어른이 돼 먼 후일 갚게 되면 그 얘기는 세상을 밝게 하는 미담으로 학생도, 교사도 모두 칭송을 받게 된다.
내가 현직을 떠난 뒤 미국 메릴랜드에서 만난 제자도, 뉴욕에서 만난 제자도, 재학시절 그 부모로부터 봉투를 받은 적이 없었다. 지난날 대통령의 영부인으로 20여 년째 해마다 성탄카드를 보내준 학부모도 학생 재학시절이나 그후로도 나에게 볼펜 한 자루 건넨 적이 없었다. 지금도 날이 추우면, 더우면, 비가 오면 안부를 전하면서 나와 같이 해외여행을 하는 게 소원이라고 그날을 학수고대하는 제자가 있다.
학생 재학 시절 교언영색으로 학부모를 불러 향응을 받았다면 그때 일회성으로 끝남과 아울러 그 비난이 두고두고 전해지기 마련이다.
교사들의 불만과 용감한 학생한 국립대학 총장은 그 자리에서 물러난 뒤 한 방송에서 회고담을 내놨다. 당신은 "총장 재임 중,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치느냐의 문제로 고민하기보다는 거의 날마다 학생처벌 문제로 회의하고 고민하다가 물러났다"라는 자조적인 얘기를 들려줬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그 말씀에 공감이 갔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동료 교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 자주 듣는 역겨운 얘기다. 일부 교사들의 불만은 교장 선생님이 교육위원회에 로비를 하지 않아 우리 학교에는 가난한 동네의 학생들이 많다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거의 상습적으로 했다. 그러면서 말끝마다 강남 학교를 얘기하는데, 그 골자는 그곳의 봉투는 두께가 두껍다는 그런 얘기들이었다.
또 다른 일부 교사는 고교 평준화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 입장을 표했다. 그들은 평준화 전 단계로 교내에서 우열반을 편성하자는 주장을 폈다. 이는 당시 고교 평준화정책에 대한 역행으로 대단히 이기적인 발상이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교내에서 이를 시행하자고 선동해 그 준비로 시험을 치르는데 몇 학생들은 그런 낌새를 알고 백지를 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다행히 몇 양식 있는 교사들의 반대와 학교장의 방침으로 무산됐다.
하지만 교감을 비롯한 일부 교사들의 주도로 육성회 임원의 요구라 하여, 성적 우수자 10% 이내 학생의 이름을 시험 후 성적우수자 명단으로 꾸며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한창 사춘기의, 더더욱 남녀공학 학교에서 교과 성적으로 학생들의 가름하는 짓은 학생 인권은 전혀 돌보지 않은 대단히 비교육적 행위였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교사들이 더 많았다. 그들 가운데는 소신으로 그런 이도 있었겠지만 닳고 노회한 교감의 견해에 동조하는 게 인사상(담임 배정 등)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좌고우면의 눈치파나 기회주의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