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 장하리에서 발견된 대형메기. 이를 유진수 금강을지키는사람들 운영위원장이 들어 보이고 있다.
김종술
4대강 사업 후 아버지 품처럼 따뜻했던 금강이 차가운 죽음의 강으로 변했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렇다고 감상에 젖어 있을 수 없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참담한 현장을 생생히 기록하는 것도 기자의 몫이었다.
"물고기를 묻은 적 없다."물고기떼죽음이 발생한 첫 날, 부여군 환경과 직원들은 거짓말을 했다. 그들이 삽으로 땅을 파서 물고기를 묻는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했는데도 딱 잡아 뗐다.
"대체 이건 뭡니까?" 그들이 보는 앞에서 손가락 삽질로 땅을 파헤쳤다. 죽은 물고기가 튀어나왔다. 그제야 "직원들이 모르고 그런 것 같다"며, 마대자루를 지급하고 땅에 묻은 사체를 다시 수거하겠다고 했다.
환경부도 물고기 떼죽음을 축소하고 감추기에 바빴다. 환경부는 사건이 발생한 뒤 13일간에 걸쳐 물고기 사체를 수거한 마대자루를 매일 장소를 옮기며 숨겼고, 김 기자는 계속 그들이 숨긴 마대자루를 파헤쳐서 수를 셌다. 어처구니없는 숨박꼭질같았다. 결국 김 기자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건 나랏일 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었다. 공무원들은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죽었는지 파악하는 것보다 들키지 않는 방법에 골몰하는 것 같았다.
공무원들도 화가 난 것 같았다. 김 기자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강아지 새끼도 아니고..."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물고기 사체를 담은 마대자루 수를 손으로 헤아리고 사진을 찍자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 순간 기자로서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던 김 기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단다.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이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혼자였고, 그들은 여럿이었다. 결국 그는 수모를 견디며 취재수첩을 놓지 않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공무원들은 항상 오전 9시에 현장에 나왔다. 출근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김 기자의 출근시간은 3~4시간이 빨랐다. 그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공무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전날 땅 속에 숨겨놓은 거짓을 파헤쳤다. 강변을 샅샅이 누비며, 수십만 마리의 물고기 사체를 카메라에 담고 취재수첩에 기록했다. 그 와중에 물고기 사체가 담긴 자루에서 침출수가 줄줄 흐르는 장면을 목격해서 기사를 썼고, 해당 관청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연속 특종도 했다. 금강 물고기 떼죽음 7일째였다. 김 기자는 충남 부여군 장하리 폐준설선 인근에서 시커먼 그림자를 발견했다. 섬뜩했다. 사람 같았다. 옷을 입고 강물 속으로 뛰어 들어 확인을 했더니 사람은 아니었다. 136.5cm에 달하는 초대형 메기의 사체였다. 무게만 약 40kg이었다. 국내에서 발견된 민물고기 중 가장 큰 것이었다.
이 기사가 또다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강변에 사는 주민들은 '씨메기'가 죽었다고 한탄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국토부 직원들은 희희덕거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매운탕 하면 한 마을 사람들 다 먹겠다."그 말을 듣고 김 기자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물고기 떼죽음과 초대형 메기의 죽음으로 4대강 사업의 참상이 드러나자 전국의 수많은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취재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일하는 직업기자들의 관심은 아주 잠깐이었다.
공무원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물고기 사체를 실어 나르던 5톤 압축식 쓰레기 차량의 기사는 강변에 침출수를 방류했다. 물고기 한 마리라도 살리기 위해 온갖 괄시와 수모를 견뎌냈는데, 모든 게 허사가 됐다.
13일간의 물고기 떼죽음을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김 기자는 차안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단다. 그 자리에서 공무원들과 멱살이라도 잡고 싸워서 피해를 막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죄책감에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단다.
물고기에게도, 사람에게도 재난이었던 금강 물고기 떼죽음 사건. 환경부는 1년 뒤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물고기 떼죽음 당시 거짓말을 하고 수거량 축소와 감추기에 바빴던 환경부가 내놓은 결론을 한 마디로 줄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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