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아침마다 국회 앞 출입구 앞에서 사망한 군인의 순직 처리를 요구했던 군 의문사 피해 유족 어머니들
고상만
'말이 쉬워' 한겨울 새벽 피켓 시위였습니다.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 새벽 6시까지 오려면 유족들은 새벽 서너 시에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어느 분은 전북에서, 또 대구에서, 부산에서, 마산에서 올라와 피켓 시위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억울했기에 '장관의 자식이 귀하면 내 자식도 귀한 자식인데' 이렇게 개죽음으로 취급하는 이 나라와 국방부가 미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오르니 한겨울 추위에 서 있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는 말씀에 제 가슴은 더 짠했습니다. 그렇게 고생한 덕분이었을까요? 마침내 희망이 싹 터 왔습니다. 유족분들이 만 2년 넘게 싸워온 결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의무복무중 사망한 군인에 대해서만은 '그 사망 원인에 대한 구분 없이 순직 처리하고 국립묘지에 안장해 달라는 취지의 '군 인사법' 개정 요구에 대해 국방부가 긍정적 검토를 약속하고 나선 것입니다. 마침내 굳게 닫힌 국방부의 철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출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관련 법안을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 심사소위가 논의하기로 한 그 날, 많은 유족 분들이 국회로 모여들었습니디. 2년 고생 끝에 꿈처럼 찾아온 그날, 곧 법안이 처리되리라 믿고 지난 고생담을 나누며 유족분들이 웃음꽃을 피우고 있던 그때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은 유족에게서 웃음 대신 난데없는 통곡이 터져나오게 했습니다.
경위는 이랬습니다. 우리가 요구한 것은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은 순직 처리하고 지금까지 사망한 군인 모두에게도 이를 소급 적용하도록 하는' 법안 개정 요구였습니다. 징병한 군인에 대해서는 국가가 그 책임을 전적으로 지는 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족들은 순직 대상을 정하고 있는 '군 인사법' 관련 법령에서 '의무복무중 사망한 군인'이라는 열 글자를 새로 넣어 달라며 싸워온 것입니다. 다른 직업군인은 스스로 선택하여 군인이 된 것이지만 징병에 의해 입대한 군인은 강제적인 것이니 그 책임을 국가가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국방부의 꼼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요구하는 대로 관련 법령을 바꾸는 것에 동의하지만, 이 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소급적용은 할 수 없다는 것을 법안소위가 열린 당일에서야 우리에게 밝혀온 것입니다.
국방부는 유족과 또 국회 국방위 야당 의원님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압박에 관련 법령을 대폭 개정하겠다고 약속해놓고, 법안 심사소위가 열린 그날에서야 자신들의 숨은 의도를 드러낸 것입니다.
내 자식은 안되더라도...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국방부가 우리를 속인 것입니다. 이전까지 국방부는 법안 개정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 우리가 이 법안을 바꾸려고 하는 것인지 국방부 관계자에게 설명하고 또 국회 입법 조사처에 법안 개정 의뢰를 할 당시에도 자세히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법안을 심사하는 당일에서야 "사실 이 법은 이전 사건 피해자에게는 소급 적용이 안 되는 법"임을 알려왔으니 유족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난 것입니다.
유족들은 "우리가 지난 2년간 이 법안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안다면 이럴 수 없다"고 격분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장 국방위 법안 심사가 열리는 회의실로 쳐들어가 항의하자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 역시 할 말이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이 분들이 지난 2년간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알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유족단체 회장이 "잠시 우리끼리만 회의를 하고 싶다"며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약 20여 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서도 법안 심사소위에서는 계속 연락이 오고 있었습니다. 유족들이 이 법안 처리를 수용할 것인지 재촉하는 연락이었습니다.
국방부는 만약 유족이 법안 처리를 반대한다면 아예 없던 일로 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애초부터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니 내심 유족이 반대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유족들이 "우리 자식에게 해당되지 않는 이 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한다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저 역시 반대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만약 이 법안이 처리된다면' 유족분들이 요구해 온 법안은 사실상 다시 논의되기 힘듭니다. 같은 법을 연달아 다시 하는 일은 관례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자식은 안되고, 남의 자식만 혜택받는 이 법안을 과연 부모님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더구나 이를 위해 지난 2년간 물불 가리지 않고 싸워온 사정을 누구보다 알기에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였습니다. 유족분들이 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분들의 눈이 모두 뻘겋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회의하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씀.
"회의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법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비록 우리는 안 되지만 앞으로 우리처럼 자식을 잃을 부모님만은 우리처럼 고통받는 일은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수용한다고 국방위 법안 소위에 알려주십시오." 순간 모두가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어머니들의 울음소리. 한 분이 터지자 이내 눈물은 전염이 되었고, 그렇게 한동안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