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직후 유디악성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한 쪽 눈이 부어 올랐다.
고기복
유디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사촌 다디가 씩씩거렸다. 어떤 암인지 조직검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을 때부터 회사에서 유디에게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라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치료받으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고, 언제 완치가 가능한지도 모르기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서 치료받는 것이 낫지 않겠냐며 퇴사 처리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것이었다.
유디는 항암치료를 시작하지도 않은 자신에게 출국을 권하는 회사가 원망스러웠다. 휴가 기간 중에 결혼할 계획이었던 유디는 무엇보다 치료가 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한국에 남겠다고 회사에 알렸다. 회사 측 말처럼 항암치료가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 그 비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의료기술이 뛰어난 한국에서 제대로 치료받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젊고 할 일이 많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건강이라고 말이다.
유디의 바람과 달리 회사가 그를 퇴사 처리해 버렸다고 다디가 알려줬다. 회사에서는 어차피 귀국할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했다. 휴가가 예정돼 있었지만, '아픈 사람이 다시 입국하겠나' 싶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얼마 후 병원에서는 병원비를 어떻게 할지를 물었고, 한국인 보증이 없으면 입원 진료가 어렵다는 말을 했다.
휴가와 결혼, 재입국을 꿈꾸던 유디에게는 상상도 하기 싫은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다. 회사에서 퇴사 처리를 해버렸다면 뜻하지 않게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항암치료 중인 그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결국 병상에 누워 고용노동부에 부당해고 진정을 넣기로 결심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던 회사지만, 항암치료를 위해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상담을 진행한 이주노동자쉼터에서 그 일로 회사에 연락했다. 회사에서는 유디가 그동안 성실하게 일해 준 덕택에 고용 계약을 당장 해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의료보험 문제는 사측이 전액 납부하되, 유디가 본인 부담금을 사측에 내는 조건으로 유지하도록 해줬다. 그러면서 "일도 하지 않는 사람과 근로계약을 하고 있으면, 그만큼 외국인 고용을 못하기 때문에 사측에서는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다"며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아픈 사람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일을 못하는 사람 때문에 인력난을 겪기 싫다는 말이었다.
다디는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귀국해야 한다고 말한 회사가 여간 섭섭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유디는 건강해진다면 다시 그 회사에서 일할 거라며 자신의 편의를 봐 준 회사가 고맙다고 했다.
치료받는 동안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을까 했지만, 회사에서는 고용보험을 들지 않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고용보험 가입이 의무사항이 아니라 회사에서는 비용절감 때문에 가입하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병원비는 결혼 준비 자금으로 모아뒀던 돈으로 충당했다. 간혹 친구들이 얼마씩 보태주기도 했고, 사촌 다디가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간병을 자처해 준 덕택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손가락을 굽힐 때 새끼손가락부터 굽힌다. 손가락을 새끼와 검지부터 굽혀보면 쉽지 않다. 하지만 중지부터는 쉽다. 유디에게 남은 80분은 훨씬 수월한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수술 후유증으로 거의 감겼던 유디의 눈은 원래 모습을 거의 회복했고 볼살은 적당하게 붙었다. 항암치료가 곧 끝날 거라고 믿는 그의 소망이 이뤄질지는 방사선 치료가 끝나 봐야 안다. 유디는 절박한 처지에 있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친구들과 사촌을 생각해서라도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싶어 한다. 그는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걸 병상에 누워 배웠다고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공유하기
'방사선치료 80분이면 완치' 그에게 기적은 올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