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에는 건장한 체격에 제복을 입은 두 명의 낯선 경찰과 와띠, 아린이 베란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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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에는 건장한 체격에 제복을 입은 두 명의 낯선 경찰과 와띠, 아린이 베란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인즉 이랬다. 장을 보고 돌아오던 와띠는 버스터미널에서 경찰 불심검문에 걸렸다.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찰에게 와띠는 "제가 여기 살거든요. 믿어주세요"라고 말하며 신분증을 이주노동자쉼터에 두고 왔다고 답했다고 한다.
와띠는 직장을 갖고 있고, 쉼터에는 간혹 들르는 입장이기 때문에 '쉼터에 산다'는 말이 맞지 않지만, 말이 짧은 입장에서 최대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 것이었다. 쉼터는 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만 건너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다. 경찰은 와띠의 팔을 양옆에서 붙잡고 쉼터까지 동행했다. 하지만 여성 쉼터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와띠에겐 열쇠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와띠가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불심검문을 하던 경찰이 쉼터까지 오는 경우는 없다. 사실 나로서도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터미널에서 발생한 일이고, 쉼터 이용자가 데려온 경우라 경찰들은 와띠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둘은 경기지방경찰청 소속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 자리에서 나는 당사자가 허락하는 선에서 협조할 수 있다고 분명히 했다.
경찰은 여성쉼터 문을 열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열쇠가 없었던 나는 경찰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없었다. 쉼터 대표라고 소개해 놓고, 쉼터 열쇠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자 경찰들은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 그에 대해 나는 비록 단체 대표라 해서 여성쉼터 열쇠를 갖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여성쉼터이기 때문에 쉼터 이용자나 쉼터 여직원이 열쇠를 관리하면 그만인데, 굳이 남자 대표가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왈가왈부할 필요를 못 느낀 탓이었다. 스스로 알아들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여성쉼터를 이용하던 방글라데시와 캄보디아 이주여성들이 구직활동으로 밖에 나갔다가 안 들어왔는지, 쉼터를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쉼터를 공식적으로 나가지 않았다면 그들이 열쇠를 갖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자가용도 없는 직원에게 늦은 저녁에 쉼터로 와 달라 하는 것도 무리였다.
난감해진 경찰은 출입국에 신원조회를 부탁하는 듯했다. 나에게는 와띠가 병원 진료를 하기 위해 쉼터 이용을 하는 것이 맞는지를 확인했다. 다행히 와띠가 진료 예약했다는 병원 의사 선생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삼십여 분이 흘렀고, 젊은 경찰은 와띠에게 신분증은 반드시 휴대하고 다니라고 훈계하였다. 선임자로 보이는 경찰이 번거롭게 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후임자를 다독이며 쉼터를 떠났다.
경찰은 와띠가 신분증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데려갈 수도 있었지만, 한발 물러서 준 셈이었다. 둘은 처음부터 상당히 신사적이었다. 쉼터까지 와서 신분증 확인을 요구한 사실에 대해 먼저 양해를 구했고, 열쇠를 갖고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려 줬다. 한참을 기다려도 열쇠를 가진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단속한 사람의 신분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의사와의 전화 통화를 믿고 양보해 주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신사적이라고 한 이유는 이렇다. '여성쉼터'라는 이유 때문에 남자대표에게 집요하게 열쇠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쉼터 대표라고 하면서 열쇠가 없다는 말에 따지려 들었다면, 설명하느라 난감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단체 대표가 사무실 열쇠를 갖고 있지 않은 게 이상하지 않느냐'고 따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듣고 싶은 말만 듣는 법이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열쇠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도, '못 믿겠다' 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그들이 신사적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저녁 늦게 쉼터 베란다에서 있었던 그 소동은 순식간에 소문이 났다. 쉼터를 이용하던 방글라데시 남자는 합법체류자였는데도 불안하다면서 다음날 쉼터를 떠났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역시 합법체류자였던 캄보디아 여성들과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줄줄이 그 주에 쉼터를 떠났다. 그들은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신사적이었는지를 묻지 않았다. 경찰들이 왔었다는 사실에만 주의했다. 겪어보면 괜찮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가 없었다.
사람 일이란 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는 그 이유를 모르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곤 하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와띠는 그중 한 사람일 거라고 믿는다. 도움이 필요할 때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경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와띠도 알 것이다.
어찌 됐든 이주노동자쉼터는 추석에도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를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신분 때문에 두려움에 떠는 사람도 있다. 세상 일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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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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