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표석도 설치되지 않은 채 그저 지번상으로만 존재하는 종로구 옥인동의 이여성 집터. 현재 세종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그 뒤편 우측에 보이는 건물이 배화여대이다.
유영호
자수궁 터인 군인아파트 정문을 마주 보며 서있는 세종아파트(서울 종로구 옥인동)는 해방정국 속 잘 알려지지 않은 지식인 이여성(본명 이명건)의 집이 있던 곳이다. 그의 집이 사라지고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을 뿐만 아니라 이곳이 그의 집터라는 표석도 없다. 해방정국 속에서 사회주의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그의 이름은 지워졌기 때문이다.
경북 칠곡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식민지 조국의 현실에 일찍 눈을 떴고 '역사'와 '미술'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아홉 살 때 서울로 올라와 1918년 보성고보를 졸업한 그 해 친구 김원봉·김두전과 함께 해외에서 민족해방운동을 벌이자는 결의를 하고 중국 난징의 진링대학에 입학했다.
그런데 이들이 떠나기 직전 김원봉의 고모부는 이국 땅에서도 조국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이들 세 명 모두에게 호를 지어줬다. 이명건은 여성(如星, 별과 같이), 김원봉은 약산(若山, 산과 같이), 김두전은 약수(若水, 물과 같이)다.
이후 이들은 한 평생 조국산천을 잊지 않고 민족의 역사와 함께 살아갔으며,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들의 본명보다 그 호를 붙여 이여성, 김약산, 김약수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