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마을에 내동댕이쳐져 지칠대로 지쳐 있는 내게 환한 웃음을 안겨주었던 네팔 아이.
송성영
네팔 바르디아 국립공원에서 이틀을 보내고 버스 시간에 맞춰 배낭을 꾸렸다. 리조트 매니저는 마을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암바사라는 곳에서 내려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포카라행 버스로 다시 갈아타야 한다고 상세히 알려줬다.
"버스 정류장까지 얼마나 걸어야 합니까?""1킬로미터 정도요."
아픈 무릎을 짓누르는 무거운 배낭을 걸쳐 메고 걸어야 할 생각을 하니 난감했다. 때마침 리조트에서 일하는 청년이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나갈 일이 있다며 오토바이를 태워줬다.
마을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암바사로 출발하는 버스가 더위에 축 늘어져 있다. 아직 출발할 시간이 남아 있다. 정류장 주변에 식당이 보인다. 장거리 버스를 대비해 생수를 한 통 사고 밀가루를 둥그렇게 반죽해 기름에 튀긴 도너츠 두 개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무렵 버스가 출발했다.
암바사에서 내리라는 직원과 아니라는 버스 차장버스 차장에게 포카라행 버스를 타야 한다며 암바사라는 곳에 내려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차장은 암바사에서는 포카라 가는 버스를 탈 수 없다며 자신이 내리라고 하는 곳에서 내리면 된다고 말한다.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40분쯤 달리던 버스가 암바사에 도착했다. 차장 말을 들을 것인지 리조트 매니저 말을 들을 것인지 잠시 갈등하다가 배낭을 걸쳐 메고 출입구로 나서는데 차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포카라 가는 버스를 탈 수 없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차장 말을 믿어보자는 심정으로 다시 배낭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암바사라는 마을에서 40분 가량 더 달려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도시에 나를 내려놓고 사라졌다.
버스 스탠드에서 영어를 할 줄 하는 사람을 겨우 만났다.
"포카라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합니다. 어떤 버스를 타야 합니까?""어디서 왔나요?""바르디아 국립공원에서요.""바르디아 국립공원요? 그 마을 앞에서도 포카라 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당신은 잘못 왔군요."버스 차장에게 속았다. 매니저 말대로 암바사에서 11시 버스를 타야 했다. 포카라 가는 길에서 40분 넘는 거리를 거꾸로 온 셈이었다.
"여기서도 포카라 가는 버스가 있습니까?""포카라 가는 버스는 두 시 쯤에 출발할 것입니다." 시계를 보니 이제 11시를 넘어서고 있다. 지금쯤 포카라 행 버스 안에 있어야 했는데 세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푹푹 찌는 땡볕이 온몸으로 후덥지근하게 휘감아 온다. 바람 한 점 없다. 주변에 그늘진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숨막히게 날아드는 이 삭막한 도시에서 더위와 싸워가며 세 시간을 버텨야 한다.
버스 차장 녀석을 다시 만나면 길바닥에 쳐 박아 버리고 싶은 분노가 솟아오른다. 분노의 화신은 굶주린 맹수나 다름없다. 누군가를 물어뜯고 싶어 한다. 결국에 가서는 제 몸까지 먹어 치우려 한다. 나는 긴 호흡으로 분노를 가라앉힌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은 껴안아야 한다. 하지만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포카라 행 버스가 출발한다는 정류장에서 출발 시간을 재차 확인해 놓고 그늘진 나무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적당히 쉴 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무릎 통증을 감내해 가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헤맨 끝에 병원을 찾아들어갔다. 한국으로 치자면 면 단위의 보건소 정도라 할 수 있는 작은 병원이다. 점심 무렵이라 그런지 환자나 의사들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잘못 왔군요" 분노가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