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간 지역으로 들어서자 곳곳에 검문소가 나왔다. 네팔 공산당, 마오이스트들이 무장 게릴라 활동을 시작한 곳이 바로 내가 네팔 국경도시에서부터 무작정 찾아가고 있던 길, 서부 네팔 중산간 지역이었다.
송성영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네팔 무장 게릴라들은 2006년까지 활동했었다. 이들 네팔 반군 공산당 게릴라들은 전근대적인 소작제의 고통을 받고 있는 농민을 기반으로 혁명을 성공시켰던 마오쩌둥의 혁명 전략(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한다)을 기반으로 한 마오쩌둥주의, 마오이스트였다. 마오이스트들이 무장게릴라 활동을 시작한 곳이 바로 내가 네팔 국경도시에서부터 무작정 찾아가고 있는 길, 서부 네팔 중산간 지역이었다.
1994년 중도좌파 노선을 걷던 네팔 공산당에서 분화되어 나온 또 다른 네팔 공산당, 마오이스트들은 무장봉기를 통해 토지개혁과 카스트 제도 철폐 등을 요구하며 부정부패를 일삼던 경찰과 공무원, 힌두왕조와의 전쟁(People's War, 1996∼2006년)을 벌였다. 농촌을 거점으로 시작한 게릴라 투쟁은 2005년에 들어 전 국토의 80%를 인민 해방구로 만들었고 그 이듬해인 2006년, 왕정을 폐지시켰다.
그리고 2008년에 치러진 네팔 역사상 첫 제헌의회선거에서 제 1당이 되어 네팔 공산당 의장이 총리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핵심적인 개혁 과제였던 토지개혁 실패와 더불어 네팔의 고질적인 가난을 극복하지 못했다. 인민 해방을 외치며 무장투쟁을 벌였던 네팔 무장게릴라들을 떠올리게 하는 몇 군데의 검문소를 지날 무렵이었다.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네팔 청년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여기서 내리세요." 나는 '바르디아'라는 지역명이 생각나지 않아 재차 확인하지 못한 채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네고 배낭을 챙겨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한때 네팔 게릴라들이 드나들었던 서부 국경도시 마헨드라나가르에서 출발한 지 5시간만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대여섯 사람들이 내게로 몰려왔다.
"숙소를 예약해 놓았습니까?""아니요.""숙소 있는데 까지 가려면 지프차를 이용해야 합니다.""이곳에는 없습니까?""여기는 숙소가 없습니다."버스가 멈춘 곳에는 숙소가 없었다. 이들은 버스 시간에 맞춰 지프차를 대기시켜 놓고 숙소로 모시고 갈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을 따라 가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때마침 젊은 외국인 커플이 지프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확인하는 차원에서 물었다.
"숙소가 이곳에서 멀리 있습니까?""예, 한참을 가야 합니다.""숙소가 있는 곳은 어떤 마을입니까?""아주 좋습니다. 환상적입니다. 정글에 사는 동물들도 아름답습니다.""당신들은 어느 숙소에서 묵었습니까?""우리가 타고 온 지프차를 이용하면 그곳으로 안내해줄 겁니다.""나는 시골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묵었던 숙소는 저렴합니까?""비교적 저렴합니다."나는 젊은 캐나다 커플이 타고 온 지프차에 배낭을 실었다. 다른 지프차 운전기사들에게 거듭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더니 다들 웃는 얼굴로 "노 프러블럼!"으로 화답한다. 내가 선택한 지프차의 운전기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말수가 적었다.
"지프차 요금은 얼마나 내야 합니까?""우리 숙소에 묵으면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나는 저렴한 숙소를 찾고 있습니까? 내가 가고 있는 숙소는 어떻습니까? ""숙소를 둘러보시고 얘기하시죠."지프차는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달렸다. 숲길과 작은 냇가를 건너 30분쯤 달린 끝에 마을이 나왔다. 잘 정돈된 마을이다. 그리 넓지 않은 논밭 사이로 초가집들이 보였다. 너저분한 도시와는 달리 길거리에 쓰레기 봉지 하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했다. 마을 앞으로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거기서 아이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사내에게 잠시 지프차를 멈춰 줄 것을 요청했다.
"수영하는 아이들 사진을 찍으려 합니다.""좋습니다."
가난한 여행자에게 가당치 않은 숙소 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