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 전통가옥...1층은 가축, 2층은 사람, 3층은 신을 위한 공간.
양학용
다시 택시를 타고 언덕을 내려서자 강물을 끼고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초입에 아주머니 세 분이 계셨다. 이곳 라다크에서는 몇 시가 아니라 아침 때 혹은 점심 때 만나자고 약속한다는데, 언제부터들 기다리신 걸까? 미안함도 고마움도 언어로는 전달할 방법이 없어 그들처럼 그냥 미소를 지을 뿐이다.
마을에는 40여 가구가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들은 세 집으로 나누어져 지내게 될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이제부터 각자 방식으로 타국의 낯선 문화 속에서 생존해야 할 것이다. 아라, 솔지, 철민, 남수와 우리 부부가 한 모둠이 되어 먼저 한 아주머니를 따라 나섰다. 우리 집 이름은 '네스핀'이라 했다. 이곳 집들은 자신의 고유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곧 주소이기도 했다. 다른 모둠 아이들이 지내게 될 집들 역시 '자고', '강첸'이라는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네스핀'은 라다크 전통 나무집으로 오래되었지만 크고 튼튼했으며 내부는 그윽하고 고풍스러웠다. 1층은 가축을 위한, 2층은 사람을 위한, 3층은 사당, 즉 신을 위한 공간이었다. 아이들이 궁금했던 화장실은 3층 실내에 있었지만, 변기 구멍은 곧장 막힘없이 2층을 지나 1층 축사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3층에서 똥을 누면 그 똥이 1층 축사로 떨어지는 장면을 여과없이 볼 수 있었는데, 사람의 똥은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고 다시 가축의 똥은 햇볕과 바람에 말려져 사람들의 생활 연료로 사용되니 순환하는 자연의 순리를 그대로 가져온 셈이었다.
그런데 좀 놀랐다. 책 <오래된 미래>를 읽으며 상상했던 것과 달리 마당에는 4륜구동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고, 거실에는 TV와 냉장고가 자랑스레 놓여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마을 생기고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나름대로 현대화된 집들만 골라 이방인에게 내어놓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네스핀'은 4대에 걸친 대가족이 살고 있다. 신기한 것은 우리들을 지구 반대편 이방인이 아니라 옆집에서 놀러온 이웃처럼 대한다는 것이다. 요란하지도 어색하지도 않게. 마치 그 집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평화로운 일상 속으로 문득 들어선 것처럼 느끼도록. 이를테면 이런 일상들. 할아버지께서는 아침이면 마당에 곡식을 널어 말리고 태양열집열판에 물을 올려놓으신 후, 하루 내내 해의 방향에 따라 곡식과 태양열집열판을 돌려놓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