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를 계산해야 한다는 말에 덕이는 싫다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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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아버지를 애타게 하던 손주 덕이가 직장생활을 잘한다고 표창장을 받고 서서히 자립하기 위해 하나씩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덕의 사랑니가 썩어 뽑아야 할 상황이었다. 알고보니 네 개 모두가 상해서 발치를 해야 했으므로 매주 화요일 퇴근 후 야간진료를 하는 치과에서 11주 치료를 받았다.
덕이는 치료 첫날 나와 함께 병원을 찾았고 그날은 충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사진과 간단한 치료를 받았다. 계산대 앞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덕에게….
고모 : "덕아~ 진료비 계산해야지?"
덕 : "고모가 하는 거 아니야?"
고모 : "응? 아니 너가 직접하는 거야."
덕 : "고모가 지금까지 했잖아."
수납하는 간호사는 무슨 일인가 싶은지 우리 둘만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이쯤 되자 "잠시 후에 계산하겠다"고 말하고 카운터 뒤쪽 대기실에서 이야기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주위 시선이 문제가 아니였다.
근래 들어 덕이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태도가 있다. 금전 관계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도 그럴 수 있는 것이 그동안 우리 집안 식구들은, 하물며 덕의 이모 할머니까지도 덕이가 직장생활을 한다고 여기기보다는 부모없이 자라는 측은한 아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용돈까지 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건 몰라도 돈과 관련돼서는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이제는 덕이의 자립을 위해 우선적으로 경제관념에 대해 지도를 해야 할 때였다.
고모 : "너의 말이 맞아 그동안은 내가 했지. 하지만, 이제는 너가 법적으로 성인이고 너의 월급을 가지고 스스로 자립하기를 원하고 있잖니? 나 또한 그점이 좋을 것 같고~. 이런 병원비도 너의 자립에 포함되는 거야."
덕이는 이런 내 말에 몹시 불쾌한 듯 표정이 굳는다. 그러나 물러설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단지 이런 경제 관념은 덕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일터에서 상담을 하다보면 종종 경제관념의 부족으로 여자든, 남자든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들을 보게 된다. 자립에 있어 필수 조건은 스스로 경제활동을 균형있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하고 온전한 자립이 아닌 것이다.
여전히 꿍한 덕이이야기 끝에 덕이가 계산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불편한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입술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미간엔 11자가 새겨져 있었다. 함께 집으로 가는 길에 "덕아~, 아까 병원에서 내가 너보고 계산하라고 하니까 몹시 싫은 표정이었는데 지금도 기분이 나쁘니?"라고 물었다.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덕이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섭섭했을까.
덕이와 유사한 사람들의 특징은 이런 것 같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함께 살고 있는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 또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건 그들이 말하기도 전에 챙겨주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사람 즉, 자신을 어떠한 경우라도 버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는 홀대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이 점을 가족이나 보호자는 잘 살펴서 알고 미리 적절한 지도를 해야 한다.
그것은 아마도 내 생각에 원초적 본능에서 나오는 반항심일 것이다. 그것을 가까운 사람이든 남이든지 스스로 잘 문제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사자나 보호자에게 제2의, 제3의 문제가 발생한다. 서로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그 결과는 안타깝게도 서로 다투게 되거나 서로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범해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 그것은 참으로 아프고 서글픈 일이다. 분명 그렇게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고모 : "덕아 사실은 고모도 너가 싫다면서 나보고 계산하라고 했을 때 몹시 당황했단다. 왜 그랬는 줄 아니?"
덕 : "…."
덕이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사실 덕이와 지내면서 내 체면은 이미 내려놓은지 오래됐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미지 관리는 하고 싶은데 어떻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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