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능요원 복무만료가 몇달 남지 않아 출하검사실에 새로 들어온 후배사원에게 업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빤쭈
내가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부하던 그 시절, 현역으로 군대를 가면 2년 2개월을 복무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현역으로 입대하지 않고 내가 보유하고 있던 '전자기기 기능사' 자격증을 활용해 복무기간 36개월짜리 산업기능요원이 됐다. 산업기능요원이 되고 복무기간이 절반쯤 지났을 무렵 군대 복무기간이 짧아진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흘러 나왔다.
당시 2년 2개월이던 군대가 2년으로, 2개월 단축 된다는 뉴스였다. 그에 따라 우리 산업기능요원들의 복무기간도 비율에 맞게 짧아졌다. 36개월을 복무해야 했던 나는 한 달의 기간이 줄어 총 35개월의 복무를 하면 '소집해제'가 된다고 했다. 산업기능요원 복무가 만료가 되어도 어차피 계속 직장생활을 해야 하겠지만 '병역 문제'가 하루라도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한달의 기간이 줄어든다는 사실은 기쁜 소식이었다.
처음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던 회사가 경영난으로 인해 1년을 미쳐 다 채우지 못하고 지금의 회사로 전직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납품사원과 생산 라인 수리사를 거쳐 출하검사실로 오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2004년 겨울. 그 겨울은 내가 산업기능요원 신분으로 보내는 마지막 겨울이었다.
나와 함께 출하검사실에서 마음을 맞춰가면서 함께 근무하던 형은 나보다 먼저 산업기능요원 복무를 마쳤다. 회사에서는 그 형이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게 하려고 형을 따로 불러 그동안의 경력을 인정해 '주임'으로 승진을 시켜준다고 하면서 회사에 계속 남아 근무를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형은 복무가 만료되고 채 한달도 되기전에 회사에 사표를 내고 거제도로 내려가 조선소에 취직했다.
그 형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이제는 내가 출하검사실의 선임이 됐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산업기능요원이 된 동생이 출하검사실로 배정받아 나와 함께 일하게 됐다. 그 동생은 사회생활 경험이 전혀 없었고 대학에 다니다가 군대를 갈 때가 돼 산업기능요원이 됐다고 한다.
산업기능요원이 돼도 훈련소에 입소해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 처음에 산업기능요원이 됐을 때는 훈련소에 가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었다. 하지만 복무를 하면서 선배 사원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또한 우리는 현역들과 달리 복무만료가 다 돼 갈 때쯤 훈련소에 입소를 한다. 나 역시도 복무만료를 약 6개월 남긴 2005년 1월에 강원도 삼척에 있는 23사단 철벽부대 훈련소에서 4주간의 훈련을 받았다.
출하검사실에 동생이 새로 들어온건 2014년 12월쯤이었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훈련소에 입소해야 했으므로 짧은 시간동안 동생이 혼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했다. TV 라는 제품에 대해 지식이 전무했던 터라 그 짧은 시간동안 많은걸 가르칠 수는 없었고, 출하검사 업무를 수행할 때 꼭 필요한 생산 라인의 구조와 출하검사 방법만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훈련소를 퇴소하고 회사에 복귀했을 때 '언제 가르쳐서 언제 써먹나…'라고 생각했던 그 동생은 이제 제법 QC(Quality Control - 품질 관리) 다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 뒤로 내가 복무만료가 되기전까지 TV 라는 제품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고 ISO 인증심사 관련 업무를 가르쳤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거나 가르쳐줘야 하는 입장이 돼 보니 후배사원을 잘 육성하는 게 선배사원의 역량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혹'을 항상 달고 다녀야 하고 혼자서 처리하면 빨리 끝낼수 있는 일을 설명을 하면서 하면 아주 느리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
출하검사실로 오기전 생산 라인에서 작업자로 근무하던 친구를 수리사로 키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 때는 친구라서 편하게 대할수 있었는데 직장에서 새로 만난 동생은 나보다 어리지만 그 친구의 성격을 잘 모르니 혹시라도 내 말이 마음에 상처가 될지도 몰라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동생을 가르치면서 이전 직장에서 내 인생 첫번째 멘토였던 신 과장님이 생각났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내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을지 그리고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이제서야 그 어려움이 느껴졌다.
이후 내가 산업기능요원 복무만료가 되어 회사를 떠나고 베테랑 QC가 된 그 동생은 산업기능요원 복무가 끝남과 동시에 아주 높은 몸값을 받고 다른 회사로 스카웃됐다. 그 소식을 듣고 '내새끼 잘했네'라며 엄마 미소를 지었다. 잘 키운 아들이 학교에서 1등 성적표를 받아왔을 때 부모님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힘들었던 산업기능요원 시절을 버틸수 있게 해주었던 힘...'삼천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