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덕정에서 활 쏘는 리지
황보름
관람료를 내고 입구로 들어서자 마치 아는 사람을 반기듯 우리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관덕정 내부에는 무료 체험소가 두 곳 있었는데, 과거 조선시대 옷을 입어볼 수도 있고, 화살을 쏠 수도 있었다. 나는 리지에게 좋은 경험일 것 같아 한복을 입어보라 권했다. 쑥스러워하긴 했지만 리지가 한복을 입었다. 예쁘게 잘 어울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활을 잡아보기도 했다.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의 설명을 따라 발 위치를 잡고 활에 화살을 끼고 힘껏 쏴봤다. 슝, 첫 번째 화살이 원안에 제대로 꽂힌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두 번째 활도 힘껏 날렸고, 역시나 제대로 원 안으로! 아무래도 소질이 있는 것 같다는 옆의 분의 말에 전율한 나는 자신감을 갖고 세 번째 활을 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모두 땅으로 슝,슝,슝,슝. 잘하고 싶다는 마음만 들면 왜 매번 모든 걸 망치게 되는 걸까! 도움을 주시던 분은 원래 그런 거라는 요상한 격려의 말을 건네준다. 어찌 됐건 예기치 않게 활까지 쏘게 해준 이곳 관덕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관덕정에서는 왜 이런 체험을 제공해주고 있는 걸까. 특히, 활쏘기는 왜? 그 이유는 관덕정이란 이름과 관련이 있다. 관덕정은 "평소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닦는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라는 뜻의 '사자소이관성덕야( 射者所以觀盛德也)'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활쏘기를 통해 몸을 단련하면서 정신도 함께 닦았던 옛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무료 체험을 통해 가볍게나마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셈이었다.
활을 쏜 후 우리는 관덕정 안으로 더 들어가 봤다. 나는 비로소 어제 그 중국인이 왜 이곳을 추천해줬는지 알 것 같았다. 눈 앞엔 사방이 개방된 정자 같은 건물 하나가 서 있었는데, 외국인들의 눈엔 분명 신기하고 독특한 건물일 거였다.
우리는 건물을 한 바퀴 돈 후 그 앞 돌계단에 앉아 좀 쉬기로 했다. 그렇게 앉아 있는데 마음이 더없이 편했다. 계속 앉아 있고만 싶었다. 리지가 준 귤을 까먹으며 나는 이곳의 역사와 이름이 품고 있는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건물은 몇 번의 중수를 거쳐 지금 이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거라는 말도 해주었다.
나는 요샌 이런 곳이 좋다고 리지에게 더듬더듬 말했다. 시끌벅쩍한 장소에 가거나 삐까뻔쩍 한 것을 보면 뭔가 마음이 불편하다고. 새로운 것에만 열광하는 삶이 너무 무의미하게 여겨진다고. 지금 멈추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새로운 것만 좇다가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죽을 것 같다고.
리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중국도 지금 그게 무엇이든 새로운 것이면 다 좋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다고. 그 바람에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그냥 두어도 좋을 것들이 다 사라지고 있다고.
우리는 서양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천천히 우리 주위를 돌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집중적으로 너무 많이 하는 인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귤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슬슬 느껴진다. 나오는 길엔 연못가에 잠시 서서 잉어들을 구경했다. 입을 뻐끔거리며 인사를 건네 오는 잉어에게 손을 흔들며 관덕정을 나왔다.
점심은 즉석떡볶이로 골랐다. 중국인들이 많이 온다는 떡볶이집 내부엔 중국어 메뉴가 한국어 메뉴보다 더 많았다. 소스도 중국인 입맛에 맞춰 사장님이 직접 개발한 특제 소스라고 했다. 내 입맛은 중국인 입맛인 것 같았다. 소스 맛이 아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