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라 페와 호수 옆 공터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 동네 강아지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낮잠을 자고 있다.
박혜경
가방을 앞에 두고 30분째 씨름 중. 세상에 이보다 어려운 '빼기'가 있을까. 난 왜 이리 짐이 많을까... 옷도, 속옷도 돌려 입어야 할 판인데 아무리 짐을 줄여도 답이 안 나온다. 포터 아저씨에게 줄 가방은 15kg을 넘지 않아야 한다. 매일 6~7시간 걷는 일정에 그것도 적지 않은 무게였다. 일단 남는 짐은 내 가방에 넣고, 그도 안 되면 포기하자.
네팔로 오기 전, 포터 없이 혼자 20kg 넘는 가방을 지고 올라가다 힘들어서 포기했다는 후기를 봤다. 가까스로 완주는 했지만 짐이 무거워 땅만 보다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안 됐네' 하고 넘길 수가 없었다. 잘못하면 나 역시 오랜만에 마실 나온 강아지 마냥 땅에 코를 박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오빠 짐은 그게 다예요?""네, 전 별로 갖고 갈 게 없어서..."트레킹숍에서 빌려온 60리터짜리 가방. 1층은 선재 오빠, 2층은 보경이, 3층은 나. 자리 분양은 끝났는데 이삿짐이 방보다 크다. 그 와중에 '갖고 갈 게 없다'니... 할렐루야!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가벼웠다. 세계여행 중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방이 작았다. "아직까지는 여름이라 짐이 별로 없어서요"라고 했지만, 내공이 엿보인다. 1년 3개월 동안 세계 여행을 할 예정이라는데 가방은 대학교 전공 서적 몇 개면 꽉 찰 크기다. '구세주' 덕분에 강아지 신세는 면했다.
물건들을 넣었다 뺐다 하길 수십 번. 에라 모르겠다. 가방에 짐을 대충 쑤셔넣고 자리에 누웠다. 버리지 못해 생각했던 시간보다 늦어졌다. 여행 가방 무게가 자신의 삶의 무게라는데… 미련만 한 가방이다.
숙소 천장에 테트리스처럼 쌓은 짐이 지나간다. 티셔츠를 밑에 깔고 그 위에 다운점퍼, 옆 공간엔 스포츠 타올... 그 위로 달콤한 찌아(밀크티) 한 잔, 물소 고기라는 소문이 있지만 그래도 입에서 녹는 스테이크, 맛있는 커피와 아늑한 잠자리가 지나간다. 당분간 안녕할 것들이다.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면 그간 컨디션 조절하느라 참았던 시원한 맥주도 원없이 마실 수 있겠지. 그렇게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