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이를 끓이기 위해 화덕에 불을 지피고 있다.
송성영
그가 움막 앞에 만들어 놓은 작은 화덕을 손짓했다. 나는 손짓으로 점포 아래 소똥 거름이 쌓여 있는 다랑이 밭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당신의 밭입니까?""예스! ""당신은 농부입니까?""......"내가 농부라는 영어 단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그런지 그는 농부라는 단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듯 했다.
"아이 엠 어 파르마르.""파르마르? 웠 더즈 잇 민?"그가 '파르마르'를 강조하면서 밭을 일구는 시늉을 했다. 인도식 영어 발음으로 농부는 '파르마르'였던 것이다. 우리의 영어 대화는 짧았다. 단어 몇 개를 던져 놓고 서로 '예스' 아니면 '노' 로 답했다. 그래도 통했다. 그는 힌두어가 섞인 영어로, 나는 콩글리시로 말했지만 대충 통했다.
주인이 사라졌다, 점포를 내게 통째로 맡긴 채영어 소통이 어려운 말들은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몸짓으로 말했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보이는데 왜 간판을 걸어 놓지 않았냐?'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움박 머리맡에 간판을 붙여 놓는 시늉을 하면 그는 곧장 알아듣고 간판을 세워 놓기가 쉽지 않다는 투로 손을 내저어댄다.
나는 그의 순박한 미소를 통해 간판을 내걸을 만큼 상술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농사를 지어가며 어쩌다 자동차 몇 대 지나가는 것이 전부인 외진 산길에서 조금이라도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짜이 장사를 하고 있다는 소박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는 내게 다 낡은 의자를 권했다. 짜이를 끓이기 위해 작은 화덕에 나뭇가지로 불을 지펴 놓고 우유와 물을 받아오겠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게 점포를 통째로 맡겨놓고.
사내가 떠난 사이 점포 안을 둘러봤다. 둘러볼 것도 없었다. 두 평 남짓한 점포는 한 눈에 들어왔다. 작은 테이블 하나에 의자 네 개가 전부였다. 반쯤 비워져 있는 사탕 한 통과 봉다리 과자 대여섯 개, 인도 담배 비디 몇 갑과 성냥이 보였다. 달걀판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샌드위치도 팔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한 식빵이 보이지 않는다. 한 달 내내 담배 몇 갑이나 팔까 싶을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도로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점포, 누가 짜이를 마시겠다고 찾아 오겠는가. 호텔. 식당. 게스트하우스가 몰려 있는 뉴 꼬사니에서 이곳까지 쉬엄쉬엄 걸어 한 시간 넘게 걸린다. 뉴 코사니에서 이곳 올드 코사니까지 대부분 자동차를 이용한다. 자동차로 지나치게 되면 간판도 없는 그의 점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얼핏 보기에 그냥 허름한 창고나 움막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사내가 양손에 우유와 물통을 들고 움막으로 돌아왔다. 화덕에 불을 지펴 놓고 양손에 재를 잔뜩 묻혀 물로 씻는다. 손에 묻힌 재는 천연 비누였던 것이다. 그는 손잡이가 달린 작은 냄비에 커피 가루 같은 차를 넣고 펄펄 끓이고 나서 채반에 차 찌꺼기를 걸러낸 다음 적당히 남은 찻물에 우유를 넣고 다시 약한 불에 끓여낸다. 그리고는 설탕을 얼마나 넣을 것이냐고 내게 묻는다.
이번에도 말로 하지 않고 작은 수저로 설탕을 떠서 내 앞에 보인다. 나는 손가락으로 아주 적은 량의 설탕을 넣어달라며 '하프'라고 말했더니 금세 알아듣는다. 연기와 잿가루가 찻잔 속으로 날아든다. 그래도 참 맛있고 달콤한 짜이 한잔이다.
그는 짜이를 마시고 있는 내게 둥근 원통의 큰 화덕을 손짓하며 '탄두리 치킨'이라고 말한다. 탄두리는 화덕을 이르는 말이다. 탄두리 키친은 화덕에 굽는 인도식 프라이드치킨이다. 이곳 코사니에 오기 전에 다람살라에서 한국인 청년들과, 또 내니딸이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맛보았기에 금방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 탄두리 치킨? 당신이 만들 수 있나요?""예스, 탄두리 치킨. 나는 소와 닭을 기르는데 그 닭으로 만듭니다."이런 산골짜기 오지에서 그것도 움막이나 다름없는 점포에서 탄두리 치킨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는 곧장 치킨을 굽겠다는 듯 불 피울 준비를 한다.
"지금 말고 내일 먹겠습니다.""내일요? 알았습니다.""반 마리만 먹겠습니다."그가 닭의 반쪽을 몸짓으로 내보이며 기분 좋게 웃는다. 며칠 전 코사니 상가의 철물점 부럼씨네 주방에서 닭볶음탕을 직접 요리해 실컷 먹긴 했는데 순박한 산골 농부의 탄두리 치킨을 맛보고 싶었다.
그에게 짜이와 비디 담배, 성냥 값으로 20루피를 건넸더니 1루피가 남는다며 거스름돈을 주려고 한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거스름돈은 괜찮다' 했더니 한껏 웃는다. 우리 돈으로 20원도 채 안 돼는 1루피에도 기분 좋아 하는 순박한 사내였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오마 약속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사내는 콧노래를 부르며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다. 오늘 매상 20루피를 기록하는 모양이다. 거기다가 탄두리 키친까지 예약 받아 놓은 것이 무척이나 즐거운 모양이다. 그날 저녁 나는 탄두리 치킨을 먹기 위해 속을 비워놓았다.
관광지와는 차원이 다른 맛, 탄두리 치킨다음날 이른 새벽부터 가는 빗방울이 내리고 있었다. 산책을 나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사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비를 챙겨 나왔다. 다행히 걸어오는 중간에 비가 그쳤다. 아침 일곱시도 채 안 됐는데 사내는 일찌감치 움막 점포를 열어 화덕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할 뻔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