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김양건 당 비서, 남측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북측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남측 홍용표 통일부 장관(왼쪽부터)이 지난달 25일 오전 판문점에서 '무박4일' 마라톤 협상을 마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2015.8.25 << 통일부 제공 >>
연합뉴스
현 상태에서 8.25 합의 이행은 추석 맞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까진 무난할 것이다. 그 이후 남북 관계가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 발전의 길로 전환할지는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와 당국자 회담의 성사 여부에 달려 있다.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는 8.25 합의의 제5항에 암시돼 있고 우리 정부가 우선으로 추진하는 과제다. 자연사 등 이산가족 당사자들의 축소, 인도주의 우선성 원칙과도 직결된다. 남북이 지속적인 상봉에 합의한 만큼 인도주의 구현을 통해 신뢰 구축과 관계 개선을 추구할 것을 기대한다. 앞으로 열린 남북 당국자 회담에서 양측은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우선 논의해 당사자들은 물론 화해와 협력을 기대하는 겨레의 열망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남북 당국자 회담 개최 여부 및 회담 성격은 향후 남북 관계의 '제1풍향계'로 작용할 것이다. 회담 대표의 격(格) 문제로 회담 개최가 불투명하거나 부적절한 의제 및 회의 진행으로 회담이 결렬될 경우 광복 70주년 남북관계는 박근혜-김정은 시기를 넘어 영구 분단 체제를 예고할지도 모른다. 다만, 김정은 정권의 전방위 국제적 고립 탈피, 특히 중국과의 관계 개선과 박근혜 정권의 대북 정책 치적 만들기 및 국내 정치적 지지 제고를 위해 남북 정권 모두 이번 대화 국면을 쉽게 포기할 필요는 크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지속적인 국제 제재와 함께 지난해 이후 식량 부족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정부 통제 밖의 시장화 현상이 달러화, 민영화 현상으로 확산될 경우 북한 체제의 사회 경제적 기반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북한은 물론 중국에도 유리하지 않을 것이고, 여기에 북중 양국의 관계 개선, 특히 중국의 대북 경제 지원 확대로 북한 정부의 사회 통제력 강화가 요청된다고 볼 수 있다.
북중 관계 개선을 위해 김정은 정권은 우선 중국의 우선 관심사인 한반도 정세의 안정에 기여할 남북 대화에 나서야 한다.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박근혜 정부도 신뢰 프로세스, 드레스덴 구상 등을 구체화해 대북 정책에 성과를 내려면 남북 대화가 필수적이다. 또 각종 경제 정책과 야당과의 소통 등 대내적 사안으로부터 국정 지지도를 회복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어 남북 관계 개선이 대안으로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남북 당국자 회담이 열리면 개성공단 확대, 신경제협력사업 모색,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민간교류 활성화 등 가능한 분야부터 논의하면 회담을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년 초, 그러니까 남한 기준으로 최소한 4월 총선까지 남북 대화가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북한의 도발, 한미합동군사연습, 휴전선에서의 우발적 사고 등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어서 낙관하기는 힘들다. 남북 당국자 회담이 정치·군사적 신뢰를 우선 관심사로 다루고, 조건이 무르익으면 국방장관 회담 개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북 관계 개선 방향과 협상 전략앞으로 남북 관계 개선 방향은 미래지향적이고 호혜적으로 접근하고, 남북 당사자 원칙 하의 평화 구축을 논의해 나가야 한다.
미래지향적이라는 점은 향후 남북관계가 지난 시간 상호 대결과 비방을 초래한 사안들로부터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천안함 사건으로 이명박 정부가 발표, 시행해 온 5.24 대북 제재 조치가 전향적인 남북 관계의 훼방꾼이 될 필요가 없다.
현 남북한 집권 세력은 천안함 사건과 5.24 조치의 직접 당사자가 아닐뿐더러 5.24 조치의 효력이 중단된 지 오래다. 남북은 당국자 회담 등을 통해 새로운 협력 사업을 도출해 남북관계를 진전해 나가야 한다. 이때 기존 4대 합의의 발전적 승계 혹은 창조적 재구성 작업은 박근혜-김정은 시기의 남북 협력의 성과로 기록될 것이다. 예를 들어 경의선 복원 사업, 개성공단 확대 및 신 남북경제특구 제정, 자원 공동 개발 사업 등 많은 프로젝트가 가능하다.
둘째, 호혜적 접근은 전쟁까지 치른 쌍방의 입장과 상호 관계를 감안할 때 매우 중요한 태도로, 상호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8.25 합의는 물론 기존 남북 간 모든 합의는 상호 이해가 동시에 반영됐기에 가능했다. 그 바탕 위에 남북 관계의 발전이 보장된다. 가령, 이산가족 상봉이 인도주의를 구현하는 사업이지만 이에 대한 이해 관계가 북보다 남이 더 크다고 본다면, 북한의 협조를 유도해내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 기념 행사를 전후로 한 북 도발 가능성이 남북 대화 지속의 관건으로 보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북에 대한 선제 공격을 배제하지 않는 작전 계획이 한미 군당국 사이에 합의됐고, 이를 군사 연습에 반영할 경우 북에 대한 도발 중단 요구는 현실 가능성이 적을 것이다. 안정적 경제 활동과 남북 주민의 안전이 남북 당국의 제일 공통 관심사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오는 남북 당국자 회담에서는 정치 군사적 신뢰 구축 방안을 주요 의제로 삼고, 거기에 인도주의와 민간교류 활성화를 논의하면 좋을 것이다.
셋째, 남북 관계를 대결에서 대화로 전환하고 남북 대화를 지속하려면 북핵 문제와 평화 체제 논의를 남북 회담에서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8.25 합의에 이런 점을 담지 않은 것은 회담의 긴급성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합의 제1항대로 남북 당국자 회담이 개최될 경우 비핵화와 평화 체제 논의는 비켜가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남북만의 논의로 결정될 수 없는 국제적 관심사다. 적어도 6자회담 참가국들의 논의, 특히 미국과 중국과의 협의가 필수적이다. 중국 전승절 기념 행사에서 한중 정상회담, 이후 미중 정상회담 등 관련국 간의 긴밀한 협의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을 전후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주장, 미국과 핵 군축회담 제의 등은 6자회담을 포함한 기존 비핵화 논의의 틀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때 우리는 10.4 남북 정상 선언에서 다룬 바와 같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에 남북 당사자 원칙을 관철해 이 문제를 남북 대화에서 협의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