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화정>.
MBC
영창대군의 누나, 정명공주의 삶을 다루는 드라마 <화정>은 광해군이 쫓겨난 이후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초반에 등장한 광해군은 퇴장하고, 요즘 방영분에서는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가 나라를 이끄는 모습이 다루어지고 있다.
드라마 속의 인조는 승자답지 않다. 그는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정명공주다. 인조는 세력을 갖고 있는 정명공주를 항상 껄끄러워한다. 최근 방영분에서는 정명공주를 반역죄로도 몰려 했다가, 여의치 않아 실패하기도 했다.
물론 드라마 속 장면에는 과장과 허구가 많다. 인조가 정명공주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인목대비가 죽은 뒤 그 주변에서 누군가를 저주하는 데 사용된 듯한 물건이 나오면서부터다. 이때는 인조가 왕이 된 지 9년 뒤였다. 이 이전만 해도 인조는 정명공주에게 한없이 좋은 조카이자 후원자였다. 드라마에서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인조가 노골적으로 싫어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이것은 실제 사실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인조가 의심했던 것만큼은 실제 사실과 일치한다. 인조는 정명공주가 자신을 왕위에서 몰아내려고 한다고 의심했다. 의심병이 어찌나 심했던지,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설명된 것처럼, 특별한 이유 없이 아프기라도 하면 '공주가 어디선가 나를 저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의심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정명공주는 광해군 시대보다도 인조시대에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다.
인조의 콤플렉스는 기본적으로 정통성이 취약한 데서 나왔다. 인조는 광해군보다도 정통성이 취약했다. 광해군은 임금인 선조의 서얼이라서 설움을 받았다. 인조는 서얼이 아니라 서얼의 아들이었다. 선조의 서얼인 정원군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서얼은커녕 서얼의 아들이었으니 광해군보다 정통성이 더 약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인조는 쿠데타라는 비정상적 절차를 거쳐 집권했다. 물론 '올바른 상태 즉 정(正)의 상태로 되돌린다(反)'는 뜻의 반정(反正)이란 명분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쿠데타 당시에 그는 여론의 전폭적 지원을 얻지 못했다. 이 점은 쿠데타가 벌어진 1623년에 있었던 왕실 혼사에 대한 한양 사대부들의 거부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 해 하반기에 인조는 아들의 배우자를 구하기 위해 사대부 집안의 딸들 중에서 지원자를 받고자 했다. 그런데 사대부 집안들의 거부감이 이례적으로 심각했다. 원래부터 왕실과의 혼인을 기피하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이긴 했지만, 이 해에는 그것이 너무나도 심각했다.
인조 1년 윤10월 27일자(양력 1623년 12월 28일자) <인조실록>에 따르면, 한양 사대부들의 기피가 하도 심각해서 지금으로 치면 서울시 구청 공무원들이 사대부 집안을 일일이 뒤지면서 처녀들을 수색해야 했을 정도였다. 이때 맹인 점쟁이들까지 동원됐다. 대문 앞에서 점을 쳐서 처녀를 숨겼나 안 숨겼나를 알아낼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왕실과의 혼사에 대한 전통적인 거부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인조 정권에 대한 한양 지배층의 거부감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사건이었다. 이렇게 수도 한양의 지배층한테서도 제대로 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출발했으니, 인조의 정통성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