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국립미술관의 모습. 조지안 양식의 건물들과 대조되는 건축 양식이다.
김현지
서울에 살 때 유난히 서울시립미술관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서울시립미술관까지 가는 덕수궁 돌담길과 미술관 내에 있는 정원을 좋아했다. 혹자는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들이 함께 걸으면 헤어지는 길이라는 말을 했지만 그게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간에 나는 그 길을 한때 연인이나 친구들과 자주 걸었다. 그렇게 덕수궁 돌담길은 복잡한 도시를 살고 있는 나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였다.
그 길을 걸을 때는 마치 과거 속의 사람이 된 것과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떼면서 나는 그 길을 음미하고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길을 따라가면 만나게 되는 곳,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비밀의 정원'과도 같은 미술관의 정원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휴식과 쉼을 주고 있었다.
미술을 전공한 가족들의 영향이 컸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미술관 가는 것을 좋아했다. 성인이 된 이후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그림을 보러 가는 것'과 함께 그림이 전시된 '아름다운 장소'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똑같은 작품이라도 어디에 전시되어 있느냐가 나에게는 더 중요했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도 갤러리가 맘에 들지 않으면 작품도 시시해졌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도 갤러리가 마음에 들면 그 작가의 작품을 한 번 더 보러 가기도 했다(정확하게 말하면 그 장소를 한 번 더 보러 갔다).
아일랜드에 이사를 온 이후 일 년 동안은 갤러리에 가지 못했다. 더블린에 한 번씩 가게 될 때도 이상하게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 하거나, 가기로 마음먹었다가도 잊어버리곤 했다. 어쩌면 작품보다 건물에 관심이 많았던 나의 눈에는 더블린의 멋진 건물이나 풍경에 빠져 갤러리를 미처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일랜드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Ireland)에 처음 가던 날도 비슷했다. 더블린에 갔었고 다른 볼 일이 있어서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우연히 국립미술관을 발견했다. 빽빽한 건물 사이에 있어 자칫 지나칠 수도 있는 건물이었지만 주변에 있는 붉은 벽돌로 마감된 조지안 양식 건물과 달리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왔었고 나도 모르게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소박하지만 사랑스러운' 아일랜드 국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