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본 이란 국경 아라랏산이 있는 도우베야짓으로 향하는 터키 동부의 국경이다.
정효정
그리고 문제의 '칭쳉총'과 성추행의 2단 콤보가 있었던 날.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들고 있던 1리터 페트병으로 그를 때리면서 쫓아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날 도와 그를 잡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잡으면 바로 경찰서로 갈 생각이었다. 이란 친구가 성추행범은 최소 태형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함부로 남의 허벅지를 만지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오히려 나를 막아선 뒤 그 남자가 도망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를 진정시켰다. "베박쉰(이란어-미안합니다)", "마담, 컴다운(진정하세요)" 내가 그런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그는 도망갔고, 그는 도망가면서도 나를 향해 "칭쳉총"을 외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화가 나서 머리가 녹아버릴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진정할 건 내가 아니라고! 저 놈을 잡으란 말야!" 하지만 사람들은 날 미친 여자 바라보듯 볼 뿐이었다.
그날 나는 바로 국경을 넘는 버스표를 샀다. 그리고 다음날 버스를 타고 터키로 향했다. 예정보다 일주일 앞선 출발이었다. 이란 입국 전에 비자 초청장 사기까지 당했던 만큼, 이란에서 체류기간 30일을 꼭꼭 채울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원래대로라면 카스피해 연안에서 신선한 캐비어를 맛보고, 마슐레라는 작은 마을에도 들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단 하루라도 더는 이란에 있고 싶지 않았다.
버스는 밤새 달려 국경이 있는 타브리즈에 도착했다. 이란과 터키국경은 바로 붙어 있었다.
"여기부터 터키야?"내가 묻자 터키 군인들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과장된 포즈로 스카프를 벗어 던졌고, 군인들은 박수를 치며 나를 맞았다.
하지만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비자 사기부터 성추행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쉬운 게 하나도 없었던 이란 여행이었다. 길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었고, 환전소 하나를 찾으려 해도 굽이굽이 골목을 헤매야했었다. 하지만 나빴던 기억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란 여행은 한 편의 판타지 동화였다. 늘 이상한 나라에 뛰어든 앨리스 갈은 기분이었다. 생소한 체제와 문화에 "이게 뭐야?", "말도 안 돼"라는 소리가 나왔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배경과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했다.
과거 이곳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높은 탑에 올려 하늘로 보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1200년 전에 죽은 이도 떠나보내지 못해 울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시를 외면서 여름 밤을 보내고, 높은 산 어딘가에는 낯선 여행객에게 별을 보여주는 여인이 살고 있다. 깜깜했던 여행이었지만 그 사이사이 점점이 별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한때 이곳은 광활한 영토의 페르시아 제국이었고, 헬레니즘 문화를 꽃 피우는 중심지였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는 이곳을 지났다. 이번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다시 교통, 통신, 에너지 등 다양한 '길'이 다시 이란을 지날 것이다. 그렇게되면, 호주에 살고 있는 내 친구는 언젠가 이란에 돌아갈 수 있게 될까? 아름답고 슬픈 여행지 이란, 지긋지긋한 성희롱의 나라였지만 다시 이곳을 찾아 앞으로의 변화를 지켜보고 싶다. 이제 터키다. 긴 실크로드 여행은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