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당하는 예수프라 안젤리코 '조롱당하는 예수',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 수도사들을 위로하는 것은 저토록 간결한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과 작은 창문 하나 뿐입니다.
박용은
그런데 나는 이런 종교적인 해석 때문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이유로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입니다.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처녀 수태를 고지받는 성모의 표정을 봅니다.
그것은, 느닷없는 방문에도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감내하려는 '어머니'의 얼굴입니다. 엄격한 수도원의 2층, 수 십 개에 이르는 첼라(cella, 수도자들의 독방)에 들어가 추위와 배고픔과 고독과 싸우며 자신을 온전히 신에게 바치려 했던 수도자들. 그들의 고행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신성도 인성도 아닌 '모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첼라들! 나는 이 첼라들에서 다시금 소름 돋는 감동을 합니다. 2평 남짓한 좁은 독방을 장식하고 있는 건 오직 창문 하나와 그림 한 점뿐. 그것은 고행하는 수도자들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위로였을 겁니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가며 수십 개의 첼라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들여다봅니다. 그곳들은 분명 텅 빈 공간이건만, 그냥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수도자들의 호흡과 묵상이 아직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호흡과 묵상들은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에 스며들어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내 앞에서 밝고 선명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나는 비로소 '프라 안젤리코, 베아토 안젤리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백 년 세월 동안 수도사들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을 위로한, 이 그림들로써 그는 정말 '천사같이 복된 자'였던 것입니다.
43개의 첼라를 장식하고 있는 프레스코들은 모두 예수의 생애와 고난, 부활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대부분 작은 화면에 간결한 구도와 차분한 색채로 그려져 있죠. 그러다 보니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회화 양식이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마사초의 화풍이 휩쓸고 있던 15세기 전반의 피렌체에서 안젤리코의 그림들은 오히려 훨씬 전 시대인 지오토의 화풍을 많이 닮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란 생각도 듭니다. 마사초의 작업은 어차피 하나의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마사초보다 15세 연상인 안젤리코는 마사초 이전에 이미 지오토라는 거대한 산맥 아래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화풍을 만들어 가는 중이었죠. 안젤리코가 마사초를 자세히 연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사초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 피렌체 회화를 이끈 건 안젤리코였습니다.
그림들을 보면, 안젤리코는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수태 고지'의 성모가 그러하듯 그의 묘사는 간결하고, 고요하고, 단순하고, 무엇보다 겸손합니다. 자로 잰 듯 정밀한 원근법이 아니라 직관적이지만 자연스러운 원근법에, 섬세한 듯하면서도 기술을 자랑하지 않는 인물 묘사는 화가이자 수도자로서 안젤리코의 정체성을 잘 보여줍니다. 그에게 그림이란 수도 일부분이고, 설교와 위로의 과정이었던 셈이지요.
이탈리아에서 갑자기 생각난 고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