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호 부장판사가 '위기청소년 희망토크콘서트'에서 소년 살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조호진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하려라." (레위기 24:19~20)"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마태복음 5:38~39)소년범 처벌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죠. 인류 역사 이래 가해자 처벌 방법은 보복을 가하자는 응보주의(應報主義)가 압도적으로 우세했습니다. 성경(聖經 Bible)에서는 두 방향으로 나뉩니다. 구약(레위기)에선 눈에는 눈으로 갚으라고 했고, 신약(마태복음)에서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가해자에게 보복하면 증오 감정이 해소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은 단절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회복적 정의가 등장했습니다. 용서와 사랑으로 평화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감정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은 엄벌 여론이 훨씬 우세합니다. 그래서 고소와 고발, 갈등과 원한, 응징과 보복으로 몸살 앓고 있습니다. 폭력, 갈취, 강도, 성폭행 등으로 흉포화 해가는 소년범죄를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여론이 매우 우세합니다. 그런데 소년재판 전담판사이자 소년범죄 전문가인 천종호 부장판사가 잠깐! 하고 엄벌주의를 멈춰 세웠습니다. 그는 소년범죄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엄벌에 처하면 소년범죄 해결은커녕 줄일 수라도 있나? 하고 반문하며 이렇게 지적합니다.
"소년범들도 순진무구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가정이 해체되고, 빈곤상태에 던져지면서 거리를 떠도는 범죄소년이 됐습니다. 소년법정에 선 아이들 태반이 결손가정과 빈곤가정 아이들입니다. 가난과 결핍이 아이들을 비행이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 어른에게 받아야 할 보호와 배려 대신에 낙인과 무관심에 방치된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깨진 유리조각처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될 동안 무엇을 했습니까?가난하다고 모든 아이가 문제아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입니다. 과거 가난한 시대에는 모두 가난해서 견딜 만했고, 성실하면 가난에서 탈출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이 점점 구조화되고 세습화되고 있습니다. 소년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극도의 가난은 인간성과 내면을 황폐하게 만들면서 꿈꿀 자유마저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소년범의 인간성을 황폐화시킨 책임은 소년보다는 무한경쟁의 승자독식 사회가 져야합니다."천종호 판사는 엄벌 대신 관용을 선택했습니다. 소년범들에게 청소년회복센터(사법형그룹홈)를 만들어주고, 소년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고, 밥과 고기를 사주고, 용돈까지 주면서 아빠 역할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70%가량의 재비행율이 30%대로 크게 떨어졌습니다.
엄벌주의는 10명 중에 7명을 다시 범죄 세계로 끌어 들였지만, 관용과 사랑은 7명 중의 4명을 회복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여러분이 소년법정 재판장이라면 관용과 엄벌 중에 어떤 방법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증오 범죄, 막고 싶습니까? 눈물을 닦아주십시오!4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총명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셈도 글도 빨리 깨우쳤습니다. 보살핌을 잘 받으며 잘 컸으면 재목이 됐을 텐데 부모는 가난 때문에 자주 다퉜습니다. 가난에 지친 소년의 어머니가 '돈 벌어서 오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훌쩍 떠났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문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목교 뚝방 동네 패거리들과 상하이 트위스트를 추다가 아랫동네 양아치들과 시비가 붙으면서 패싸움하곤 했습니다.
새마을고등공민학교를 그만둔 소년은 판자촌 소년소녀들처럼 구로공단에서 일했는데 월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리다고 떼먹으려 한 겁니다. 소년이 사장에게 월급을 달라고 했습니다. 공장장이 월급 대신에 욕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달라고 하자 멱살을 잡으며 쫓아냈고, 악착같이 "내 월급 내놔요!"라며 소리를 지르자 소년을 때렸습니다. 월급은커녕 맞고 쫓겨난 소년은 공장 벽에다 주먹질을 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공장을 때려치운 소년은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물건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소년의 홀아버지는 그새 늙어 구부정해졌습니다. 어느 날, 소년의 아버지가 큰아들과 연년생인 작은아들에게 "형이 경찰에 잡혀갔다!"고 말했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노점 단속반에 붙잡혀 유치장 생활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삭막한 유치장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밤새 술을 마시며 울었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큰아들 때문에 몇 차례 더 경찰서에 불려 다녔고 소년은 끝내 소년원에 갔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변호사를 살 능력은커녕 탄원서가 뭔지도 몰랐고, 선처를 구할 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울지 않았습니다. 울어봤자 소용없다는 걸 일찌감치 안 것입니다. 소년은 학교도, 어른도, 경찰도, 법도 세상 그 무엇도 믿지 않았습니다. 대신 살아남기 위해 칼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무서운 세상은 찌르지도 못하고 자신만 마구 자해했습니다.
그 소년이 저의 연년생 형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교도소와 경찰서를 드나드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에 부모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가출하지 않았다면? 사장이 월급을 제대로 주었다면? 형은 어떻게 됐을까.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저의 가정, 저희 형처럼 소년범 중에 70%는 결손 가정이나 저소득·빈곤층 가정 출신으로 부모 이혼, 부모의 알코올 중독, 정신질환, 학대, 폭력, 방임을 경험합니다. 소년범 중 67%는 성인범이 되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괴물이 됩니다.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씨가 <신창원 907일의 고백>에서 괴물 예방법을 알려줍니다.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 번만 쓸어주셨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이 ×놈의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에 와, 빨리 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 속에 악마가 생겼다."소년범을 위해 흘리는 판사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