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3미켈란젤로 '다비드' (부분),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인체의 골격과 근육, 힘줄과 핏줄까지 섬세하게 묘사된, 르네상스 인간의 이상적 상징입니다.
박용은
'완전무결'의 몸성경에 묘사된 '다비드'가 어린 소년의 이미지라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완전무결한 청년의 모습입니다. 신체 각 부분의 골격과 근육은 해부학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묘사입니다. 손등, 팔, 목덜미 등에 팽팽하게 부푼 핏줄과 힘줄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죠.
그런데 당시 피렌체 시민들의 눈에는 꼭 그렇게 보이진 않았나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체에 비해 상체가 훨씬 크고 두껍고, 머리와 손도 인체 비례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크게 묘사돼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원래 두오모의 지붕에 올리려던 계획을 감안한 것으로 아래에서 올려다 보았을 때 더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구약 성서의 영웅, 다비드가 5미터가 넘는 거대한 누드 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망측하다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외침과 기독교 근본주의적 광풍이 한 번 휩쓸고 간 피렌체에, 그리스 고전 조각의 양식을 재해석해 내외부의 적을 맞아 싸울 만반의 준비를 갖춘 지적이면서도 용맹스러운 '다비드'의 모습은 그 자체로 피렌체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원래 계획과 달리 피렌체의 정부 청사가 있던 '시뇨리아 광장'에 자리잡게 됐죠. 이후 작품 손상에 대한 우려 때문에 1873년 이곳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겨지긴 했지만 피렌체 르네상스의 상징으로 '다비드'의 위상은 여전합니다.
학창 시절의 미술책을 통해서는 물론이고, 서적을 통해서나 인터넷과 각종 영상물을 통해서 우리는 쉽게 <다비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비드>는 때로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역시 진품이 주는 감동은 그 어떤 선명한 영상 자료로도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이번에도 느낍니다. 나는 무엇보다 저 거대한 대리석상의 작은 한 부분, 한 부분에도 미켈란젤로의 땀과 숨결이 스며있다는 사실에 전율합니다.
그런데, 비단 <다비드>뿐이겠습니까? 이탈리아에 온 지 이제 겨우 7일 지났을 뿐인데,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예술 작품들 하나하나에서 얼마나 많은 감동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감동은 무뎌지지 않고 오히려 새롭게 피어납니다. 한 작품 한 작품 만날 때마다 온 몸에서 감동을 느끼는 새로운 세포들이 생겨나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말 그대로 '벅찬 감동'을 안고, <다비드> 주위를 돌다가 겨우 발길을 옮깁니다.
사실 <다비드>가 전시된 곳에는 <다비드> 외에도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이 여러 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미완성의 형태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성 마태오 상>을 비롯하여 네 점의 <죄수 상>, 그리고 <팔레스트리나의 피에타>까지 모두 미완성 작품입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 형상을 갖춘 상태가 아니라 이제 막 대리석에서 형상을 찾아낸 듯한 상태의 미완성입니다. 미켈란젤로 같이 위대한 작가가 도대체 왜 이런 미완성 작품들을 남겨뒀을까요? 물론 계약에 의해서 작품 제작이 이뤄지던 당시의 관행상, 작품 제작 중 계약 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미완성의 형태로 작품이 남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의 이 미완성 작품들에는 그런 이유와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켈란젤로의 예술 정신입니다.
이 작품이 미완성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