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위), 혁중(왼쪽), 예은(오른쪽)이의 책상 낙서예은이는 책상 모서리에 ‘나도 좀 살자. 제발 숨이라도 쉬자’라고 적어 놓았다. 세상에서 다들 무서워하는 중2가 책상에 적어놓은 말로는 너무 끔찍했다.
임정훈
처음 예은(가명)이의 책상에 적힌 낙서를 발견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예은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 이를 테면 부모가 갑자기 이혼을 했다거나, 가기 싫은 학원에 억지로 밀어 넣는 엄마와 갈등이 커졌다거나, 친구들 사이가 틀어져서 외톨이가 됐다거나 하는 등등 -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예은이는 책상 모서리에 '나도 좀 살자, 제발 숨이라도 쉬자'라고 적어놨다. 얼핏 보면 시험에 지친 고3 수험생이나 대입 재수생 혹은 고시생 아니면 출구 없는 고단한 삶에 나가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어른의 독백 같았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아니, 세상에서 다들 무서워하는 중2가 책상에 적어놓은 말로는 너무 끔찍했다.
아무래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 같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예은이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점심 먹고 함께 운동장을 거닐고 싶다고. 영문도 모르면서 예은이는 "아이스크림 사 주세요"라면서 흔쾌히 동의했다.
운동장을 거닐며 예은이가 들려준 대답은 생각만큼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예상했던 대로 학원 문제 때문에 엄마와 갈등이 커져서 매일 싸우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 학교생활이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것, 친구 미령이와 좀 다퉈서 아직 서먹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 그런 정도였다. 혹시 말하지 않은 다른 사정이 더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은이는 그날 이후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예은이의 낙서를 잊어갈 때쯤 다른 반 수민(가명)이가 노란색 접착식 메모지에 '답답해'라는 세 음절을 또박또박 큼지막하게 적어서 책상에 붙여놓은 걸 또 보고 말았다. 혼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이번에는 그냥 못 본 척 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답답함을 풀어달라는 구조 신호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종이에 적어 책상에 붙여 두는 것으로 해소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수민이도 며칠 후에는 '답답해' 종이를 책상에서 떼어냈다.
남학생인 혁중(가명)이는 하얀 페인트를 칠한 교실 벽에 연두색 펜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는데 그걸 본 순간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혁중의 책상 옆 교실 벽에는 "내 아를 나아둬. -우리 아버지-"라고 적혀 있었다.
혁중이는 집안 사정으로 서너 달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새로 적응을 하는 데 힘들어 하는 중이었다. 두발과 복장은 물론 학교생활 전반을 두고 자신을 꾸중하는 엄하기만 한 담임 선생님과 갈등도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기도 했다. 속상하고 화도 난 김에 혁중이는 제발 자신을 좀 그냥 놓아두라는 메시지를 교실 벽에 남긴 것이었다. 거기에 자신의 아버지를 모셔다 놓았으니 이 절박한 호소 앞에 웃음이 터지는 건 당연지사.
애도 어른도 아닌 열다섯 살... 낙서 통한 수다와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