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미주리 주립대학에 재학하던 시절 동료 및 교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 뒤쪽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나의 모습이고, 왼쪽에서 네번째가 나의 평생 은인으로, 미국에 도착하던 날 마중 나왔던 애나 블레어 박사. 그녀의 이름을 따서 내 딸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미주리 주립대학
참 잠깐인 듯 했는데 뒤돌아보니 긴 세월이었다. 내가 미국에 첫발을 디딘 때는 1955년 3월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이 2015년이니 딱 60년 세월이 흘렀다.
우여곡절 끝에 얻은 미국행 비자를 쥐고 여의도 비행장을 떠나 사흘 만에 미국에 도착하던 그날, 내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은 8달러가 전부였다. 나는 마중 나온 교수 집에서 점심을 먹은 그날 오후 2시부터 4달러를 주고 작업화를 마련하여 곧바로 잔디 깎는 일로부터 길고 긴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수업이 있을 때나 방학을 가리지 않고 각종 아르바이트 잡일을 하며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여 석·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적 제약회사인 존슨앤존슨에서 연구원으로 시작하여, 각종 권위 있는 상을 받으며 승급에 승급을 거듭했다. 1989년에는 미국 최초로 경구 피임약 노개스티메이트(norgestimate)를 발견·개발하는 개가를 올렸고, 설립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회사로부터 제약 연구가 최고의 영예인 '존슨 메달'을 받았고, 석좌연구가 지위에 오르기도 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2002년 70세에 은퇴하여 이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각종 질병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면서 더 늦기 전에 나의 일대기를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도 10년 이상이 더 흘러버렸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은퇴지인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우연한 기회에 한 기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권유로 나의 일대기를 쓰기로 했다.
처음 일대기를 쓰려던 결심을 한 것은 그저 나의 자녀들과 후손들을 위해서였다. 일제와 한국전쟁 등 험난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 세대들은 누구나 그렇듯이 자녀들이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세상을 너무 안이하게 살아간다는 생각과, 자신들의 선대가 나름대로 끼쳐온 긍정적인 영향을 모른 채 고마움을 잊고 산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또 하나는, 혹 나의 자녀들이 뚜렷한 목표를 갖지 못하여 방황하고 한 번 뿐인 삶을 허투루 살아가고 있지 않나하는 노파심이 자주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이고 국소적인 이유가 나의 일대기를 쓰게 된 까닭의 전부는 아니다. 대충 나의 영문 일대기를 읽고 들었던 기자가 말하기를 "험난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삶 자체 그대로가 우리의 귀중한 현대사"라면서, 특히 남과 북, 그리고 이국에서 삶의 고비 고비들을 극적으로 통과해온 나의 삶 자체가 갖는 무게가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나의 일대기를 일컬어 "재미를 더해 주기 위해 누군가가 연출한 한편의 광대한 드라마"라고 했고, 내 삶을 '보이지 않는 손이 연출한 8달러의 기적'이라고까지 하며 일대기를 기록으로 남길 것을 권유하고 격려했다.
북한에서의 유소년 시절을 보냈고, 혼란한 해방정국에서 청년기의 삶에 이어 20대 초반에 도미하여 숨 가쁘게 살아 온 평생이었다. 뒤돌아보니 나의 삶 자체가 우리의 현대사의 한 부분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연배의 한국인들 치고 엄청난 삶의 곡절이 없는 분들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삶 역시 마치 꺼져가는 등불이 되살아나듯 앞뒤가 꽉 막히고 캄캄한 상황을 헤쳐 나왔다.
마치 내가 나고 자란 곳에 가까이 있던 압록강변에 끝없이 펼쳐져 있던 갈대와 같은 게 나의 삶이라고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갈대는 세찬 광풍이 불면 땅에 닿을 정로 휘어지기는 하지만 결코 꺾이지 않는다. 나 역시 고비마다 극적으로 되살아나는 체험들을 여러 번 했다. 젊은 시절에 특정 종교의 신을 믿지는 않았으나, 삶의 고비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을 여러 번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분연히 일어섰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끝에서 나는 "내 배를 채우는 삶으로 만족하기 보다는 누군가를, 많은 사람을 돕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나는 열심히 살았고, 내가 택한 길을 후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았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불완전한 자신을 안고 끊임없이 선택하고 결단하며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진지한 삶을 살았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삶의 원기가 되기를 바란다.
나의 어머니, 그리고 후창리 내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