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간공예로 만든 호랑이이수진 작가 작품 호랑이의 과유불급
하도겸
보릿대를 잡듯이 마음을 잘 잡으면...<미린다왕문경>에는 "뜻의 작용은 어떻게 하여 움켜쥠을 특징으로 하고, 지혜는 어떻게 하려 끊어버림을 특징으로 합니까?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십시오"라는 왕의 질문에 답한 비구(比丘, 불교승) 나가세나(那先)의 말에 보리가 등장한다.
"당신은 보리를 베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보리를 어떻게 벱니까?"
"왼손으로 보릿대를 움켜잡고 오른 손으로 낫을 들어 보리를 벱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출가자는 뜻의 작용에 의해 자기 마음을 움켜잡고 지혜에 의해 자기의 번뇌를 끊어버립니다."보릿대를 잡듯이 자기 마음을 잘 잡으라는 뜻이니 보리는 우리 삶을 수행처럼 생각하는 이들의 도반이기도 하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보리(菩提)라고도 한다.
엄동설한에도 푸르른 생명력을 잃지 않는 보리수필가이자 영문학자인 한흑구(본명 한세광(韓世光))는 수필집 <동해산문>에 실린 작품 <보리>에서 엄동설한에도 푸르른 생명력을 잃지 않는 보리를 "온 겨울의 어둠과 추위를 다 이겨내고, 봄의 아지랑이와 따뜻한 햇볕과 무르익은 그윽한 향기를 온몸에 지니면서, 너, 보리는 이제 모든 고초와 사명을 다 마친 듯이 고요히 머리를 숙이고, 성자인 양 기도를 드린다"라고 찬미한다. 겨울의 추위를 견디면서 생명을 유지하다가 마침내 봄을 맞아 결실을 맺는 보리를 기도하는 성자에 비유한 이 작품의 모티브도 보리(菩提)가 아니었을까?
우리 전통 무용 가운데 보릿대춤이 있다. 전라도 지방의 허튼춤으로, 뻣뻣한 춤동작을 보릿대에 비유한 것이다. 손목과 팔목 같은 뼈의 관절만 부분적으로 움직여서 추는 춤으로, 일종의 '입춤(立-)'이라고 할 수 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즉흥적으로 추는 서민적인 춤이 바로 이 보릿대춤이다. 보릿대로 말이나 광대, 피리 그리고 인형을 만들던 우리 전통놀이도 있다. 이와 같이 깨달음을 은유하기도 하는 보리는 '보릿고개'라는 말처럼 매우 힘겨웠지만 이젠 향수로 우리에게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