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더 하트 오브 씨스틸컷
인 더 하트 오브 씨
1819년 여름, 21명의 선원을 태우고 낸터킷에서 출항한 238톤의 포경선 에식스호는 출발한지 15개월 만에 남태평양 한 가운데서 성난 고래에 들이 받혀 침몰하기에 이른다. 망망대해에서 모선을 잃은 선원들은 세 척의 고래잡이 보트에 나눠타고 4800km나 떨어진 남아메리카를 향해 나아가기로 결정한다. 3개월 뒤 단 8명 만이 살아남게 되는 죽음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너새니얼 필브릭은 에식스호의 일등항해사로 8명의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인 오언 체이스의 조난기와 당시 그의 보트에 함께 탔던 소년 급사 니커슨의 회고록을 토대로 그들이 겪은 처절한 수난기를 생생하게 복원했다.
앞에도 언급했듯 이들이 겪은 고난은 <백경>의 이쉬마엘이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책은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조난당한 선원들이 느낀 공포와 무력감, 그 속에서 힘을 끌어내는 인물들의 리더십, 생존에 대한 열망 등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더불어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과 문화적 오만이 어떤 비극을 빚어낼 수 있는지, 인종이나 출신에 대한 차별이 어떻게 부조리함을 자아내는지, 극단적인 굶주림과 식인행위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마치 눈 앞에서 보듯 현실감있게 그려낸다.
첫 항해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조난을 당한 스물 여덟의 선장 폴라드와 그의 선원들의 이야기는 모항 낸터킷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금은 미국의 작은 도시이지만 당대에는 포경산업의 중심지로 풍요를 누렸던 낸터킷을 너새니얼 필브릭은 숙력된 다큐멘터리 작가처럼 생생하게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고래잡이 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당시의 분위기와 그 중심지 낸터킷의 사회상을 설득력있게 묘사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에식스호의 상황은 물론 배에 오른 스무 명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끄는데 성공한 것이다.
너새니얼 필브릭의 충실하고 섬세한 묘사는 첫 항해를 하는 선장이 가장 늦게 선원을 지명하는 전통에 따라 에식스호가 숙련된 선원을 구하기 어려웠던 점,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선주들의 농간으로 충분한 양의 식량을 싣지 못한 점, 낸터킷 출신과 외지에서 온 선원의 구별이 흑백의 구분 만큼이나 컸던 사정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부분부분에 미치고 있다. 이와 같은 철저한 분석과 체계적인 묘사야말로 독자들이 에식스호 조난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결정적인 장점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신실한 퀘이커 교도로서 온순하고 평화적인 삶을 지향하는 낸터킷 사람들이 포경선에 올라 거리낌없이 잔학한 학살자로 돌변하는 모습부터 그들이 전인미답의 망망대해로 나가 거대한 수컷 향유고래에 들이받혀 배를 잃는 믿기 어려운 순간까지를 단정하고 깔끔한 문장으로 묘사한다. 바로 이 지점, 고래잡이 배의 선원들이 그들이 사냥하던 고래에 의해 죽음에 직면한 아이러니한 순간으로부터 책은 진면목을 드러낸다.
책은 조난자들이 어떻게 잘못된 결정을 하고 고난을 겪으며 극한의 위기와 마주해 살아남고 또 죽어가는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무려 94일 동안 7200km를 표류하며 마침내는 서로의 고기를 먹게 되는 참담한 과정이 더없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짝을 찾기 어려운 해양논픽션으로서의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체이스의 보트가 사라진 지 8일째인 1821년 1월 20일, 폴라드와 헨드릭스 보트의 사람들에게도 식량이 떨어져가고 있었다. 그날 헨드릭스 보트에 타고 있는 흑인 가운데 한 사람인 로슨 토머스가 죽었다. 열 사람이 나눠 먹어야 할 식량이 겨우 450그램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헨드릭스와 그의 부하 선원들은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문제를 내놓고 말하기 시작했다. 즉, 토머스의 시체를 수장하는 대신에 먹어야 하느냐, 그래서는 안 되느냐 하는 문제였다. - <11장 운명의 제비뽑기> 중에서풍부한 조사를 바탕으로 탄생한 빼어난 해양 논픽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