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으로 중국에 간 원민씨는 열 달 만에 중국어 시험 HSK 고급을 땄다. 그 뒤로 5개월간 중국 곳곳을 여행했다.
원민
민은 제대하고 복학했다. 등록금은 군대 가기 전에 모아놓은 돈으로 냈다. 취업 생각만 했다. 아침 7시에 도서관에 가서 버스 끊길 때까지 혼자서만 공부했다. 학점은 모두 A+. 2학년 2학기 때 교환 학생이 되어 중국 상하이로 갔다. 강의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있었지만, 민은 주로 길거리에서 지냈다. 현지인에게 말을 걸었다. 석 달째부터 의사소통이 됐다.
그는 한 학기를 보내고 상하이에서 심천(홍콩과 1시간 거리)으로 학교를 옮겼다. 일주일에 한 번씩 홍콩에 갔다. 그곳에 있는 세계적 기업들을 탐색하고 다녔다. 홍콩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를 알게 되었다. 주말마다 그 친구의 친구들, 그 친구의 식구들과 영어로 말하며 지냈다. 몇 개월이 지나자 영어도 중국어처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중국 간 지 열 달 만에 중국어 시험 HSK 고급을 땄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인 중국 여행을 했어요. 심천에서 상하이, 서안, 우루무치, 티베트, 윈난성 등 13개의 성을 갔어요. 윈난성은 소수 민족들이 많이 살아요. 차별 받으니까 한족보다 더 가난하게 살아요. 거기서 만난 소수 민족 할머니가 '우리 삶을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어요. 멋진 건물이나 수려한 장관보다는, 자기 삶을 고수하는 할머니 모습이 더 좋았어요."
여행 마치고 그는 다시 윈난성으로 가서 한 달을 지냈다. 그 할머니도 찾아갔다. 돌아보면, 중국말을 빨리 하고 싶어서 '돌아이'처럼 굴며 살았다. 택시를 타도 "아저씨 잘 생겼어요", "오늘 날씨 좋아요" 같은 말을 꺼냈다. 중국으로 여행 온 한국 사람에게 가이드를 할 만큼 말이 늘었다. 교환 학생이 끝나고는 알바해서 모아 놓았던 돈으로 5개월간 여행도 했다.
2012년, 민은 전주대 중문과 3학년 2학기로 복학했다. 그의 목표는 변함없이 취업.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써 넣고 싶어서 통역 봉사를 2천 시간 했다. 평창 스페셜 올림픽, F1 코리아 그랑프리, 세계예술치료캠프, 태권도 세계대회에서 통역 봉사 온 전국의 대학생들을 만났다. '이네들과 경쟁을 해서 취업해야 되는데 쉽지가 않겠구나'를 실감했다.
"통역봉사도 '학교 급'이 있어요. 서울의 알아주는 대학에 다니면 고급 의전을 가요. 저는 지방대라는 벽을 느꼈어요. '대학원에 가서 학벌 세탁을 할까? 편입할까?' 생각이 들 정도로 열등감이 생겼어요. 오랫동안 제 멘토를 해 주신 한 교수님이 '지금은 학벌보다 실력이 중요한 사회야'라면서 저를 말렸어요." 민은 보여줄 수 있는 건 스펙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중국어는 이미 고급, 영어도 토익 900점을 넘겼다. 일본어 2급, 한국사능력 자격증도 땄다. 영어와 중국어를 할 수 있는 그는 4학년 2학기에 한국관광공사 싱가포르지사 인턴이 됐다. 그곳에서 서류 번역을 했다. 행사 때면 현지인들과 부스를 만들어서 관리했다. 재미가 있어 관광 공부를 신 나게 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대부분 계약직. 그래도 다들 자기 목소리를 내며 일했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그만두는 게 당연했다. 그 사람들은 미련을 두지 않고, 다른 회사와 계약해서 떠났다. 싱가포르에서 6개월 일한 원민씨, 정규직 전환이 안 됐다. 그러나 그는 실패라고 여기지 않았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겠다는 꿈은 그대로였다.
2013년 한여름, 원민씨는 싱가포르에서 전주로 돌아왔다. 스물일곱 살 '취준생'으로. 혹시나 해서 관광공사 홈페이지에 들락거렸다. 채용 공고는 뜨지 않았다. 어떤 직장이든 들어가야 할 처지, 수십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한 달 만에 어느 대학의 평생교육원 외국어 지원팀에 채용됐다. 전환형 계약직,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정규 직원이 될 수도 있다.
"외국어 수업 커리큘럼이나 취업 영어, 영어 인터뷰 수업을 정했어요. '어떤 게 대학생들한테 효과적일까' 고민하면서 강의를 만들었어요. 시민이나 초등학생 상대로 영어 수업도 만들었고요. 그 안에서 해보고 싶은 게 되게 많았어요. 그런데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어요. 결국 6개월 만에 그만뒀어요." 구직자 청년, 외로운 청년들에게 말 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