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씨는 스물여섯 살에 이미 졸업했던 대학에 다시 입학해서 물리치료 공부를 했다.
매거진군산 진정석
성지씨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을 행동으로 옮기며 살았다. 고등학교 때 어울리던 친구들과 우르르 군산 군장대학 물류유통과에 입학했다. 친구들이 군대 갈 때, 덩달아 입대 지원서를 냈다. 공익 근무 요원으로 근무하고 대학을 졸업한 성지씨, 또 친구를 따라갔다. 수원에 있는 한 반도체 회사에 취직했다. 그의 나이 스물네 살이었다.
"'이건 사는 게 아니다' 생각이 들었어요" "평생 직장으로 다닐 만한 회사였어요. 월급이랑 복지도 좋았어요. 친구 네 명이서 옥탑 방에서 살았는데 너무 추워서 겨울에는 잠바를 입고 잤어요. 하루 12시간씩 교대 근무를 했고요. 방진복을 입고서 기계 앞에서 하는 일이었어요. 눈 뜨면 회사 가고, 퇴근하면 자는 게 다였어요. 8개월 일하니까 '이건 사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지씨는 점차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뭘까'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했던 숱한 선택, 성지씨 스스로 결정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후회 없이 달려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이렇게 계속 살면 후회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어릴 때 어머니한테 항상 듣던 말이 생각났다.
중학생 성지는 팔이 빠지는 습관성 어깨 탈골(스물두 살에 수술해서 완치됨)이 있었다. 자주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팔을 들 수 없었다. 병원에 가서 빠진 팔을 끼워 넣기 수십 차례. 차츰차츰 스스로 빠진 어깨를 집어넣을 수 있게 됐다. 성지는 허리 디스크도 있었다. 어머니는 성지를 데리고 정형외과에 다녔다. 어머니는 문득 누워서 치료받는 아들에게 말했다.
"성지야. 너는 커서 물리치료사가 딱 맞겠다. 험한 일은 못하겠어." 수원에서 군산 집으로 내려온 성지씨. 부모님한테 "대학 가서 공부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부모님은 "자리 잡았으니까 결혼만 하면 되는데 무슨 소리냐?"라고 했다. 성지씨는 그냥 버텼다. 지금 하지 않으면, 다른 모든 것도 못할 것 같았다. 친구들은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성지씨에게 "너, 미쳤냐? 정신 좀 차려!"라고 했다.
스물여섯 살 성지씨, 이미 졸업했던 군장대학에 다시 입학했다. 물리치료과,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뼈와 근육을 배웠다. 왜 근육을 이완시키고 운동 시키는지 알아갔다. 자가 오십견 치료기를 만들어서 서울의 코엑스에서 열린 전시회에 출품도 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에도 나왔다.
"3년간 학교 다니고, 스물아홉 살에 취직했어요. 경기도 일산에 있는 개인 병원이었는데 과 선배 따라서 간 거였어요. 주로 노인 환자들이 왔어요. 저는 핫팩 대주고, 전기 치료, 초음파 치료만 하면 됐어요. 환자들이랑 친해지니까, 진짜로 이 환자들을 낫게 해주고 싶었어요. 근데 그 선배 밑에서는 공부를 할 수 없는 거예요. 치료 기술 면에서 많이 아쉬웠어요."그는 도수 치료(손으로 하는 물리 치료)를 잘하는 물리치료사가 되고 싶었다. 군산으로 내려와서 개인 병원에 취직하고는 '칼텐본 협회'를 찾아다니면서 도수 치료를 배웠다. 1년 내내 물리 치료 연수가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갔다. 주말마다 광주와 대전, 구리까지 다녔다. "저 선생님 치료 잘하더라"는 말이 성지씨를 따라다녔다. 월급도 많이 올랐다.
"너는 결혼 늦게 해! 결혼하니까 책임감이 생기더라. 아내랑 아기가 있으니까 뭘 못하겠더라."함께 어울려 놀던 그의 친구들이 성지씨에게 말했다. '이 정도 기술 있고, 이 정도 벌면, 여자 만나서 결혼만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던 성지씨는 '팍' 흔들렸다. 현재 삶에 대만족하면서 주저앉아 사는 서른두 살, 다른 길을 가보고 싶었다. 사표를 썼다. 두려움은 없었다. '나는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갖고 있다'라고 생각했으니까.
서른 두살, 회사 떠나 여행길 오르다"혼자서 우리나라 여행을 했어요. 통영의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한 달을 지냈어요.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야가 넓어지더라고요. '일적인 것 말고 다른 것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면서 극한까지 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철인 3종 경기(수영, 사이클, 마라톤)를 해보고 싶었어요. 퇴근하면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노느라 제 몸무게가 100kg 넘은 적도 있었거든요."군산으로 돌아온 성지씨는 수영부터 배웠다. 지방 덩어리였던 뚱뚱한 몸, 물에 잘 떴다. 수영하고, 헬스 하고, 은파 유원지 걷고. 두 달 만에 20kg이 빠졌다. "유레카!" 그는 목욕하다가 발가벗은 몸으로 달려가던 아르키메데스의 심정을 알았다. 그는 수영하면서 수중 치료에 눈을 떴다. '지금껏 해 온 정형외과 치료 말고 신경계 치료를 배워야 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1월, 성지씨는 뇌졸중이나 몸을 못 쓰는 신경계 환자를 치료하는 논산의 한 병원에 취직했다. 퇴근하고 운동도 계속했다. 자전거를 타다가 만난 '논산 철인 팀'이 "같이 해볼래요?" 물었다. 그들과 운동하면서 봄이 지났다. 논산 철인 팀은 그에게 6월에 열리는 대전 철인 경기대회에 나가자고 했다. 정식으로 수영을 해 본 적 없는 성지씨는 말했다.
"포기할게요.""도전을 해야 포기라는 단어가 있어. 도전도 안 했는데 포기라는 단어를 쓰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