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J. 심슨(사진은 2007년, 무장강도 혐의로 다시 법정에 서게 된 심슨)
연합뉴스
194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심슨은 미식축구로 이름을 날렸다. 두 차례 '올해의 선수'로 뽑힐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고 은퇴 후에는 방송과 영화에서 활약한 스타였다. 그는 첫 번째 결혼 뒤 1985년 니콜 브라운과 재혼했다. 심슨은 의처증을 보였고, 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혼 뒤인 1994년 6월 참극이 벌어졌다.
심슨의 집에선 의심스런 광경이 연출되었고, 게다가 며칠 뒤 차량으로 도주까지 했으니 여론은 심슨을 살인자로 몰아갈 수밖에 없었다. 용의자는 흑인이고 피해자들은 백인이란 점까지 합쳐져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분위기 속에 드디어 재판은 시작되었다.
심슨은 '드림팀'으로 불리던 변호인단을 선임하고 반격에 나선다. 변호인단은 유무죄를 좌우할 배심원 12명을 설득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먼저 심슨을 체포하는 등 초기 수사에 나선 수사관 마크 퍼먼이 과거 흑인을 비하해온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리고 증인을 통해 그가 흑인을 경멸하는 표현인 '검둥이'(nigger)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과 재판에 이기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증언하게 한다. 또 법정에서는 심슨의 집에서 발견된 피묻은 장갑이 심슨의 손에 맞지 않는 장면이 고스란히 공개되고 말았다.
변호인단은 재판 내내 증거조작 가능성을 강력하게 제기한다. 10월 3일, 미국 전역의 관심 속에 드디어 배심원들의 평결이 내려진다.
"우리 배심원단은 심슨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로 평결합니다." 법정에는 환호와 한탄이 교차했다. 여론은 재판결과에 승복하기 어렵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1999년 갤럽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36%는 심슨의 살인죄를 확신했고, 38%는 심슨이 살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무죄라는 답변은 6%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심슨이 무죄를 받아낼 수 있었던 건 배심원을 잘 설득하고 검찰의 약점을 줄기차게 공략한, 절묘한 전략이 가져온 결과였다.
"심슨의 무죄 판결은 영미법 특유의 배심원 제도, 1990년대 당시 로스앤젤레스의 정치사회적 분위기, 검찰의 잘못된 대응, 드림팀이라고 불린 변호인단의 수완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나온 결과였다"(L. 레너드 케스터, 사이먼 정 지음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 심슨 살인 혐의 무죄, 민사사건에서 대반전사건은 심슨의 승리로 끝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1년 뒤 민사소송에서 반전이 벌어졌다. 1996년 9월 피해자의 유족들은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지방법원에 심슨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민사재판에서도 100여 명의 증인이 등장했다.
배심원들은 심슨의 일관성 없는 증언과 유족 측이 제시한 새로운 증거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배심원단은 심슨이 악의를 품고 니콜과 골드먼을 폭행함으로써 위해를 가했을 뿐만 아니라 골드먼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초래했다고 평결했다.
형사에서 무죄로 풀려난 심슨은 민사에서는 850만 달러의 피해배상에 2500만 달러의 징벌적 배상까지 더해져 총 3350만달러의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됐다. 그는 파산 상태에 이르러 연금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여기서 민사와 형사의 결과가 판이한 까닭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다. 왜 이런 결과가 벌어졌을까. 배심원들의 평결이 재판결과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미국 재판제도의 특성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민사와 형사의 증명 정도의 차이가 결정적인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 이것을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유죄일 수 있다(가능성)'거나 '유죄일 것이다(개연성)' 정도로는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한국의 형사소송법(307조 2항)도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사와 형사재판 결과 다른 까닭은심슨 사건에서는 살인 현장을 본 목격자가 없었던 데다 검찰의 유력 증거인 유전자(DNA) 검사 결과가 변호인단의 조작 공방에 휘말리면서 배심원들에게 의심의 여지를 남겼다. 결과적으로 검사의 입증이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심슨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 때문에 무죄를 면한 셈이다.
반면 민사사건에서는 원고와 피고의 증거를 놓고 누가 더 진실에 가까운지를 보게 된다. 형사사건만큼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게다가 민사재판에서는 심슨이 법정에서 모순된 진술을 반복한 점이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 한 가지, 형사재판은 12명의 배심원이 만장일치 평결을 해야 하는 반면, 민사재판은 12명 중 9명 이상의 평결 쪽으로 결론을 내려야 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민사와 형사 재판에서 심슨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되었다.
하지만 심슨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07년 심슨은 다시 법정에 서게 된다. 이번엔 무장 강도 혐의를 받는다. 그는 공범과 함께 총기로 무장한 상태로 호텔 객실에 무단 침입, 수천 달러 상당의 기념품을 강탈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징역 33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O. J. 심슨의 형사재판은 미국의 사법체계를 뒤흔들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게다가 미국이라는 사회가 갖는 상업성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형사 배심원 12명 중 흑인이 9명이었고, 민사 배심원 중 9명이 백인이었다. 이건 재판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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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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