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점을 잃으셨나요? 이 길 위에 서 보세요

[유럽포토에세이⑫] 그 길 위의 당신을, 여전히 가슴 가득 응원합니다

등록 2015.03.17 17:09수정 2015.03.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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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지역의 호수. 2010년.  무작정 기차를 타고 가다, 차장 밖의 풍경에 이끌려 내린 이름도 모르는 그 어느 마을의 호수.
뮌헨지역의 호수. 2010년. 무작정 기차를 타고 가다, 차장 밖의 풍경에 이끌려 내린 이름도 모르는 그 어느 마을의 호수. 배수경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견딜 때는 확실했던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보인다. 가야 할 방향을 알지 못하고 헤맨다. 그대로 있으면 길을 잃는다는 절박함은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진정 누구인가,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줘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모든 인간관계가 회의적이 된다. 의지할 곳도 없고 전적으로 믿어줄 사람도 없는 것 같다.

                                                            - '살아가는 동안 나를 기다리는 것들 '중에서


어느 들판. 2010년.  무작정 내려 봄날의 오후를 보냈던, 독일의 어느 들판.
어느 들판. 2010년. 무작정 내려 봄날의 오후를 보냈던, 독일의 어느 들판.배수경

언젠가 베네치아에서 만난 한 여성이 "베네치아에서는 길을 잃으시길! 그러면 베네치아의 깊숙히 숨겨진 아름다움들을 발견할 수 있을꺼예요"라는 인사를 제게 건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의 여행을 위해, 제게 특별히 베네치아산 와인 한 잔을 따라주었죠. 그날의 그 맑고 청량했던 와인만큼 그 순간, 그녀의 눈은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가 가지 않았던 길들이 주는 기쁨을 충만하게 느낄 줄 알았던, 목표점을 향해 가장 빠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계산하는 여행이 아닌, 돌아가고 실수하는 길들 위에 온전히 자신을 열어놓고, 그것들이 주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배울 줄 알았던 그녀를, 그 이후로도 저는 가끔씩 떠올려보곤 합니다.

어느 비오는 날의 풍경. 2012년.  목표점이 없이, 도시 Basel을  헤매이다 만난 풍경.
어느 비오는 날의 풍경. 2012년. 목표점이 없이, 도시 Basel을 헤매이다 만난 풍경. 배수경

이제 막 30살에 들어선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을까요? 우리의 인생도 그러한 여행과 같다는 것을. 사람이 생을 살아내는 길도 그와 같아야 한다는 것을. 무언가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삶이 목표점에서 자꾸만 벗어나 실패와 시련으로만 가득찬 것 같을 때, 누구에게도 이해받고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움으로 휘청거릴 때, 그래서 분노와 두려움, 외로움으로 절망할 때, 그녀는 그 '~으로부터 벗어나 버린 것 같은 길' 들 위에도 생의 보석이 숨겨져 있음을 알았을까요.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이 무엇이건 그 앞에 온전히 가슴을 열어두고 그것이 전하는 것들을 즐기고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호수.  2010년.  그저 풍경에 이끌려 내린 어느 마을
호수. 2010년. 그저 풍경에 이끌려 내린 어느 마을 배수경

비가 오면 그 빗방울들을 화음삼아 때로는 그것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자유로이' 자신 만의 춤을 추어도 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곳에 반드시 그 어느 길을 가고, 무엇을 이루어내고, '나' 를 증명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생이 주는 모든 가능성에 자신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늦은 오후의 어느 길. 2012년.  스위스 Basel 에서 우연히 만난 한 산책길.
늦은 오후의 어느 길. 2012년. 스위스 Basel 에서 우연히 만난 한 산책길. 배수경

길을 잃으셨나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크게 해보세요.

무엇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아 보세요. 그리고 이 길을 느껴보세요. 이 길이 말하는 것들에 판단의 잣대를 내려놓고, 조용히 귀를 기울여보세요. 이 길 위에서' 생을 걸어내는 일'을 즐겨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는 잃어버린 길들 위에서, 길을 잃어 알게 되는 것들을 내 품 가득 안아보세요.


독일의 한 마을. 2012 년.  기차밖 풍경에 이끌려 무작정 내렸던, 마을.
독일의 한 마을. 2012 년. 기차밖 풍경에 이끌려 무작정 내렸던, 마을. 배수경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지요?!
그래요.
설혹 그 길이 당신이 원하지 않았던, 잃어버린 길 어디 위라도
저는, 그리고 생은
당신을, 여전히 가슴 가득 응원합니다.
#목표점 #우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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