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들판. 2010년. 무작정 내려 봄날의 오후를 보냈던, 독일의 어느 들판.
배수경
언젠가 베네치아에서 만난 한 여성이 "베네치아에서는 길을 잃으시길! 그러면 베네치아의 깊숙히 숨겨진 아름다움들을 발견할 수 있을꺼예요"라는 인사를 제게 건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의 여행을 위해, 제게 특별히 베네치아산 와인 한 잔을 따라주었죠. 그날의 그 맑고 청량했던 와인만큼 그 순간, 그녀의 눈은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가 가지 않았던 길들이 주는 기쁨을 충만하게 느낄 줄 알았던, 목표점을 향해 가장 빠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계산하는 여행이 아닌, 돌아가고 실수하는 길들 위에 온전히 자신을 열어놓고, 그것들이 주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배울 줄 알았던 그녀를, 그 이후로도 저는 가끔씩 떠올려보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