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 선거법 위반 사건 유무죄 판단
김용국
재판부는 후보자비방을 유죄로 하고, 벌금 100만 원 선고유예형을 내린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죄가 되나, 이로 인하여 피고인을 처벌하지는 아니한다'고 선언하고는 "일응 모순적으로 보이나, 실제 양립가능한 결론"이라고 자평한다. 배심원들의 평결을 존중하여 "죄가 되나 처벌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라는데, 이것은 묘수였을까 아니면 장고 끝에 악수였을까.
안 시인과 검찰 모두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한다. 2심 법관들의 '직업적 양심'은 어디로 향했을까. 항소심(광주고법 전주1형사부 재판장 임상기 부장)에서 대반전이 일어난다. 배심원의 평결처럼 전부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우선, 항소심은 1심과 달리, 트윗에 올린 내용을 허위사실로 보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진위불명'일 뿐 허위성이 입증되었다고까지 볼 수는 없다"며 허위사실공표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후보자비방은 어떻게 보았나. 2심은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이 있었다"는 점은 1심과 의견을 같이 했다. 관건은 공익목적이 있었느냐다. 후보자비방죄는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는 이 조항을 "진실한 것이라는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진실한 것으로 믿었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해석한다.
2심은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 안 시인의 주장은 '진위불명'이지만 언론기관이나 공신력 있는 기관 자료에 근거하였고, 일부 표현 과장에 불과한 점 ▲ 의혹제기는 공공이익도 있는 점 ▲ 공직후보자는 비판과 감시 대상이고 후보자 인격권 침해도 일정한 요건 하에 용인되는 점 등을 제시했다. 따라서 후보자비방죄는 위법성조각사유에 해당되어 무죄가 되었다. 이 사건은 검사의 상고로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항소심 "모두 무죄"... 배심원 평결과 일치 2심 판결에 당혹감을 느꼈을 쪽은 검찰만이 아니었다. "법관의 존재이유로서 포기할 수 없는 직업적 양심"에 따라 유죄를 선고했다던 1심 재판부로서도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다. 일반인이 유·무죄를 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사건에서 1심 재판부보다 더 경력이 많은 고등법원 재판부가 일반인과 같은 결론을 내렸으니 말이다. 1심 재판부는 이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할까.
관건은 1심 재판부의 지적처럼 배심원 평결이 법관의 직업적 양심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하느냐 마느냐가 아니었다. 법률전문가와 비전문가의 판단 능력의 차이도 아니었다. 위법성 조각 사유을 어떻게,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지 하는 판단기준의 문제였다.
다시 말해 후보자의 검증과정에서 어떤 언행까지 허용할 것인지, 공익성과 비방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놓고 답을 내려야 하는 문제였다. 법원의 판결도 같은 사안이라도 표현의 자유와 비방 사이에서 유무죄가 오갈 정도로 판단이 쉽지 않은 부분이다.
1심 판결은 주문(결과)보다 이유(근거)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재판을 위해 도입한 국민참여재판제도의 취지를 거슬렀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국민참여재판이 시작된 지 2년이 흘렀을 즈음(2010년 3월) 대법원 판결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겠다. 배심원들의 만장일치 평결은 존중될 필요가 있다는 의미심장한 판결이다.
배심원 만장일치 일부 무죄 평결, 2심 "유죄"로 뒤집어 [사례] A씨(당시 21세)는 후배 B군의 여자친구인 C양이 모텔에서 30대 남성 D씨와 성관계를 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B군와 C양은 미성년자였다. A씨는 B군과 함께 모텔방을 찾아간 뒤 D씨에게 "얘가 내 동생인데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하느냐"라며 D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1회 때려 피해자에게 전치 4주 상해를 입혔다.여기까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1심(서울남부지법 제11형사부 재판장 한창훈 부장)은 A씨에게 상해죄를 인정, 징역 10월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추가범죄가 적혀 있었다.
A씨는 B군과 함께 모텔방에 쳐들어가 D씨에게 성매매를 빌미로 "경찰에 신고한다", "죽여버리겠다"고 협박과 욕설을 하여 송금을 요구하고 금목걸이를 빼앗았다. 또, B군에게는 "만약 경찰에 잡히면 내 이름이 '김훈'이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따라서 A씨는 단순상해가 아닌 강도상해죄에 해당하며, 아울러 범인도피교사죄로도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1심 법원은 관련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법정에서 진술하게 했다. 9명의 배심원들도 함께 증언을 들었다. 증언과 함께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모두 살펴본 배심원 전원과 1심 법원은 상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유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배심원들과 재판부는 A씨 등이 미리 강도를 공모한 적이 없고, D씨의 신용카드나 현금을 빼앗지 않은 점, 목걸이의 소재가 불분명한 점 등에 의문을 품었다. 범인도피교사 부분도 B군의 진술이 오락가락해서 신뢰성이 떨어졌다. 따라서 유죄의 기준이 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도록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어서 무죄라는 결론이다.
하지만 2심(서울고등법원 제10형사부 재판장 이강원)은 이 판결을 뒤집는다. 재판부는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의심을 일으켜 증거를 배척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D씨가 일관되게 피해 진술을 하고 있고, 여러 정황 증거가 있는데도 이 증거를 배척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 아닌 관념적 의심이므로 전부 유죄라고 판시했다.
대법원 "만장일치 배심평결 한층 더 존중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