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 피해 드리블하는 지소연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의 지소연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북한 김은향의 수비를 피해 드리블을 하고 있다.
유성호
<SBS 스페셜> '우리는 왜 공에 열광하는가' 편에서 만난 지소연, 윤경신, 차유람 선수가 이야기하는 공의 의미는 남다르다. 그들의 공에는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극복한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스포츠 종목 앞에 '여자'라는 단어가 붙으면 대부분 비인기 종목이 된다. 여자 축구, 여자 야구처럼 말이다. 여자 축구 선수들은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하는 남자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래가 더 불확실하다.
축구 선수 지소연의 현재 소속팀은 세계적인 축구 명문 '첼시 FC 레이디스'팀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지만, 지소연을 제외하고 여자 축구 선수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2010년 여자 월드컵이 끝나고, 밀려오는 수많은 방송 취재 요청 때문인지 그녀는 조금 지쳐 보였다. 인터뷰 전에도 대한축구연맹에서 개최한 행사에 참여하고 도착했다며 깍듯하게 인사를 건넨다.
그라운드 위에서의 폭발적인 경기 모습만 보다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눈 그녀는 앳되고 수줍음 많은 소녀였다. 경기에서 질 때는 너무 힘들고 속상하지만, 득점하는 순간의 짜릿함 때문에 축구를 계속한다고 했다.
"이젠 축구공을 발에서 뗄 수 없게 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공만 보고 달려왔거든요. 축구공은 제 모든 것이자, 앞으로도 함께 할 존재입니다."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할 때면 반짝 주목을 받는 종목들이 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으로 유명한 핸드볼,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효자 종목인 양궁과 사격, 레슬링, 유도 등이다. 대부분 비인기 종목이다. 몇 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관심이지만, 선수들은 그마저도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세상 어디에도 당연한 메달은 없다. 기대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 때의 비난은 선수가 오롯이 감당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구기 종목 선수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축구의 박지성, 야구의 박찬호, 배구의 김연경 등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그리고 핸드볼의 윤경신을 빼놓을 수 없다. 세계적인 수준의 독일리그에서 1997년부터 2002년까지 6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고, 수천 명의 팬들을 몰고 다니는 슈퍼스타였다. 올림픽, 세계 선수권, 아시안 게임에서 모두 득점왕을 차지한 그는 2002년 세계 핸드볼 연맹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단언컨대, 코트 위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에서 만난 윤경신과 두산 핸드볼팀(현재 윤경신이 감독을 맡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선수들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공 사이에서 윤경신 의 큰 키와 날렵한 몸매는 단연 돋보였다. 아직은 몸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 훈련 강도가 세지 않다고 했지만 선수들의 파이팅과 열기는 뜨거웠다.
체육관에서 학생들이 연습하는 소리가 들리자 윤경신은 직접 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핸드볼을 위해서 하는 건데요, 뭘."그는 멋쩍게 대답했다. 한마디로 "30년 넘게 함께 한 친구이자, 상대를 위협하는 폭탄 같다"는 공의 의미보다 인터뷰 전에 "핸드볼을 위해서 한다"고 했던 말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뭘까. 참 멋진 선수다. "수고했다"며 악수를 청하는 손은 또 왜 그리 큰지.
사실 피겨와 수영, 배드민턴을 인기 종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김연아, 박태환, 이용대라는 스타가 등장해서 주목을 받았던 것이지, 그들을 빼놓고 보면 여전히 비인기 종목이다. 협회의 착오로 도핑테스트를 받지 못해 경기 출전이 제한된 이용대, 올림픽 포상금 문제로 홈쇼핑까지 등장해야 했던 박태환을 보며 안타까움을 넘어선 분노를 느꼈다. 지소연, 윤경신, 차유람도 인터뷰를 마치면서 하나같이 당부했던 것이 바로 '관심'이었다.
뛰어난 실력과 단아한 외모로 주목을 받고 있는 차유람을 만나러 태릉선수촌을 가는 길. 제작진들은 그 어떤 인터뷰 때보다 조금 들떠 있었다. 노란 국가대표 운동복을 입은 그녀의 말투와 행동은 당당하고 발랄함이 넘쳤다. 공은 결코 자신의 편이 아니라 언제나 이기고 넘어야 하는 상대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당구는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전하고, 또 도전하게 되는 블랙홀이죠."인터뷰 내내 "배고파요!"를 외쳤던 그녀는 오랫동안 이어진 촬영에도 웃는 모습으로 최선을 다했다. 정식 경기가 아니었음에도 공을 바라보는 매서운 눈빛이 참 인상 깊었다.
얼마 전, 캐나다 캘거리에서 봅슬레이 국가대표 훈련을 하고 있는 윤종에게 연락이 왔다. 대표팀 모두 열심히 훈련하고, 잘 지내고 있단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평창올림픽에서는 꼭 메달을 따고 싶다는 녀석의 목소리가 자신만만하다. 무엇보다 재미있다고 한다.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앞으로 봅슬레이하면 자메이카의 <쿨러닝> 대신 우리나라 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을 먼저 떠올려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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