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벙커 건물이었던 구조물을 암벽 등반용 구조물로 활용하고 있다.
신희완
템펠과 베를린 마을 시장처럼 현재 베를린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장소들을 비교해 보면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동·서독의 분단 시절 베를린 장벽이 가로 막던 주변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장벽으로 인해 버림 받았던 지역들은 통일 전후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된 건물들이 많았다.
이 장소에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노동력 확충을 위해 초대된 외국인 노동자부터 학생과 예술가까지 섞여 있다. 이들이 모인 목적도 군대 면제·대안적인 삶 혹은 저렴한 월세 등 상이하다. 이들은 비어있는 집을 무단으로 점거하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월세의 건물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60~1970년 당시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일어났던 스쾃(건물 무단 점거 운동)도 이 지역을 독특하게 만들었다. 당시 무단으로 건물을 점거한 많은 사람들은 현재 정식 계약을 해 지내고 있다. 물론 그 중 몇몇은 끝까지 저항을 하다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 베를린2001년부터 올해 말까지 무려 13년에 걸쳐 베를린 시장직을 맡아온 클라우스 보베라이트(Klaus Wowereit) 시장이 한, 베를린에 관한 가장 유명한 문장이 있다. 바로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Berlin ist arm, aber sexy)"라는 말이다. 이 말이 언급된 2003년 당시 베를린은 그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버림받은 상태였다.
동시에 이제 막 터전을 잡기 시작한 다양한 사람들이 삶을 일궈나가고 그 안에서 다양한 문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의 젊은이만이 아니라 세계의 젊은이에게 가장 인기 있고 섹시한 도시로 발돋움했다. 빈곤, 이주민 문제, 대안 운동에 대한 수용 어느 것 하나 보통의 도시가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베를린은 '다름의 불편함'을 포용할 수 있었기에 이에 대한 수용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