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동아시아 건축 포럼과 한중 대학생 건축설계 워크숍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칭다오 이공대 사진부
평상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국 학생들이라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같은 중국 학생인 X는 왜 울지? 체면과 자존심을 목숨처럼 여기는 중국인에게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지러운 내 속을 그대로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얼마안가 X가 눈물을 닦고 울먹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냥 답답해서 울었어요."
답답하다니, 뭐가? 내가 더 답답해졌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반장이 나섰다.
"진라오스(金老师, 학생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가 '다시'라고 말했잖아요." 다른 학생들도 짐짓 비죽비죽 우는 표정을 지으며 거들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우리도 울고 싶다고요." 아무리 한국어를 못하는 중국 학생이라도 반드시 알아듣는 한국어가 있다. 아무리 설계가 좋아 죽는 학생이라도 질색하는 한국어가 있었다. 바로 내가 한국어로 말하는 "다시!"였다. 학생들은 내 입에서 "다시"라는 말만 나오면 소리 없는 경기를 일으켰다. X, A, L처럼 표 나게 반응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설계에 욕심이 많은 학생일수록 그랬다.
물론 나도 안다. 밤 새워 한 작업을 발표하자마자 "다시"라는 말을 들을 때 얼마나 맥이 빠지는지, 때로는 그 말을 하는 사람조차 얼마나 원망스러운지를. 그러나 나는 또 안다. 구운 도자기를 미련 없이 산산조각 내고 다시 빚는 도공처럼 '다시'하고 '다시' 한 후에 비로소 얻게 되는 진화의 희열을.
그때의 진화는 설계 실력만이 아니다. '다시'하는 창작의 담금질은 마음까지 진화 시킨다. 또 있다. '다시' 소리를 덜 듣기 위하여, 그 '다시'에 제대로 맞대응하기 위하여, 준비하다보면 초짜의 물컹하고 푸석한 논리력은 어느새 예리하고 치밀하게 다듬어진다. 생각의 우물 안에 갇혀 있던 개구리가, 설령 당장 우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더라도, 우물 밖을 상상하게 된다.
학기 초면 학생들은 대지조사를 나간다. 건물이 들어설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조사하고 그 내용을 설계에 반영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발표하는 내용이 고작 사진 몇 장과 현황 설명이라면? 당연히 '다시'해야 한다. 대지조사는 눈에 보이는 것만 조사하는 것이 아니다. 대지의 면적, 주변 건물의 높이, 용도, 형태, 풍향, 교통 체계, 기후, 일조 등 물리적인 요소는 기본이다. 그 대지와 관련된 역사, 인구, 생활문화, 경제 상황, 앞으로의 발전 계획 등 인문 사회적인 요소도 조사하고 분석해야 한다.
거기까지 해도 학생들은 또 '다시' 소리를 듣게 된다. 정작 중요한 것이 빠졌기 때문이다. 대지 조사한 내용을 어떻게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디자인에 담아낼 것인지, 자신만의 시각과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대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곧 설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개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지조사부터 기본적인 설계 계획이 잡힐 때까지 학생들은 매번 '생각부터 다시' 소리를 들어야 했고, 그때마다 끔찍하게 지루해하고 피곤해했다. 그런 학생들을 보는 나도 지루하고 피곤했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나와 학생들이 생각하는 '다시'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어느 날 복도에 학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서 있었다. 모두들 책을 꺼내 들고 목청껏 읽고 있었다. 그 옛날 사서삼경을 읽는 선비처럼 말이다. 학생들마다 읽는 페이지가 달라서 복도는 중구난방 저마다의 소리로 요란했다. 계단 창가에 서 있는 학생도 목에 핏대를 세우고 책을 읽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니?" 내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시험이 있어서요. 교실 문이 잠겨 있어서 기다리는 동안 시험공부를 하는 거예요." 한 학생이 얼른 대답하고 다시 책을 줄줄 읽기 시작했다. 맙소사! 이게 시험공부라고? 복도를 꽉 채운 학생들은 한결같은 모양새로 큰소리를 내며 책을 달달 외우고 있었다. 저러고도 공부가 될까 싶었지만, 다들 오직 자신의 목소리에 몰입해 있었다.
놀라운 것은, 곧 시험을 치를 학생들의 표정이 시험이 없는 내 수업시간보다 더 편안하게 보였다는 것. '다시'를 들을 때의 불안하고 흔들리는 표정이 아니었다. 시험공부를 많이 하고 안 하고를 떠나, 공통된 하나의 정답만 찾으면 된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니 학생들이 왜 '다시'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지 짐작이 갔다. 그 후 우리는 '다시'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았다.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많은 문제를 풀도록 훈련된 학생들에게 '다시'는 후퇴와 퇴보를 의미했다. '다시'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과제를 하기 위해 밤을 새운 시간은 그대로 낭비한 것이 되고,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낭비했다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무능력하다는 것이며, 그래서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
학생과 나 사이의 간격...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