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그리움'이라고 말하는 박진화 화백. 그는 오늘도 그리운 것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김신형
박진화 화백의 그림도 역시 쉽게 읽혀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뭔가 모르게 가슴에 확 다가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때로는 불도장처럼 뜨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처연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그림은 목숨과 맞바꿔야 되는 것'이라고,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께 들은 말을 박진화 화백은 아직도 잊지 않고 되새긴다. 그림이 안 돼 죽을 만큼 힘들면 '어려우니까 그림이지 쉬우면 그림이겠나'하며 마음의 칼을 다시 한 번 벼린다. 그리고 또 도전한다. '그래, 너는 뭔데?'하면서 그림에게 종주먹을 들이대며 부딪힌다.
박진화 화백은 약관의 나이인 30대 초반에 강화도로 왔다. 그리고 철책이 마주 보이는 대산리의 작업실에서 붓을 들고 씨름을 했다. 어느 때는 그가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대개의 경우 승산이 없는 겨룸에서 진을 다 뺐다.
그럴 때마다 그는 마니산을 올랐다. 그림이 떠오르지 않을 때나 또는 그림과의 한 판 씨름에서 버겁게 버팅기다가 마니산에 가서 기운을 얻어오곤 했다. 그렇게 오른 것이 천 번도 더 넘는다고 하니 그의 그림들은 어쩌면 그가 그린 게 아니라 마니산이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
한밤중에도 마니산을 찾았다. 마치 신내림을 받듯 그는 참성단에 올라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오르던 어느 날 그는 어떤 기운과 대면했다. 부옇게 형체도 없이 둥둥 떠다니던 그것을 신들린 듯 캔버스에 옮겼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