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기1중전회로 결정된 두사람의 지도자후진타오는 총서기로 장쩌민은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남아있는 1년간의 동거를 알리고 있다
조창완
사반세기 동안 실질적으로 중국을 지배한 장쩌민그리고 후진타오가 주석에 올라설 때, 과연 장쩌민이 권력을 어디까지 내놓는 가가 관심거리였다. 그 징후를 볼 수 있는 것은 2002년 11월 열린 16기 1중전회였다. 이 회의 결과 나타난 가장 뚜렷한 인사는 동반퇴진을 말하면서 고희(古稀)를 넘긴 정치인들이 퇴장한 것이다. 톈안먼(天安門) 비극의 발원지였지만 건재했던 리펑(李鵬) 전인대(全人大) 상무위원장을 비롯해 주룽지(朱鎔基) 국무원 총리, 리루이환(李瑞環) 정협(政協) 주석, 웨이젠싱(尉健行) 당기율검사위 서기, 리란칭(李嵐淸) 부총리 등이 중앙정치국위원에서 물러났다.
물론 장쩌민(江澤民) 주석도 물러났다. 하지만 장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으로 풀이되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갖는 한편 후진타오(胡錦濤)를 비롯해 7명에서 9명으로 늘어난 상무위원의 대다수를 자신의 세력으로 채우는 데 성공했다. 장쩌민(江澤民)의 실질적인 후원을 받은 인물은 주석직을 받은 후진타오(胡錦濤)를 비롯해 우방궈(吳邦國), 자칭린(賈慶林), 쩡칭홍(曾慶紅), 황쥐(黃菊), 뤄간(羅幹) 등 6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쩌민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다른 사람에 넘긴다고 해도, 실권을 쥐고 있는 셈이었다.
2002년 11월 16기1중전회를 통해 형성된 구조를 놓고 다양한 말이 오가는 것에 대해 한 지인은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지 말라고 강조했다. 사실 감독인 장쩌민(江澤民)이 후진타오(胡錦濤)를 투수에 기용하고, 원자바오(溫家寶)를 포수에, 쩡칭홍(曾慶紅)을 유격수에 기용한다는 것일 뿐 옳고 그름의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확실한 것은 장쩌민이 팀의 성적을 책임지는 감독으로 완전히 굳어진 이상 그 팀의 성적에 관해서도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측근들이 상무위원회를 장악하던 후진타오 시절까지 합치면 근 사반세기 동안 중국의 실권을 장악한 셈이다. 마오나 덩이 권력이 있다지만 당대 중국을 만든 것이 장쩌민이라는 말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리고 그의 유산은 앞으로도 만만치 않게 중국 정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 혁명을 이끈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후난과 쓰촨 사람들인 반면에 장쩌민은 화동지역인 양저우(楊州) 출신이다. 혁명의 기운이 사라진 다음을 장악하는 것은 당연히 지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