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 돈 몇천원이면 원하는 해산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중앙시장과 태평양 바다를 그대로 담은 칠레표 해물뚝배기 빠일라 마리나
김동주
웅장하게 채색된 교회와 옛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구시가지의 뒤쪽에는 산티아고의 중앙시장인 메르카도 센트럴(Mercado Central)이 있다. 칠레의 넘쳐나는 해산물 덕택인지 '시장'이라는 이름과 달리 오로지 해산물만을 판매하는 전통시장에 들어서자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가게마다 한 명씩 뛰어 나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쏘아댄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나 볼 법한 풍경을 산티아고에서도 볼 줄이야. 눈에서 온통 광선을 쏘아대는 준과 달리, 탕과 해물 면에서는 전 세계에 한식의 적수가 없다고 믿던 나는 그저 비릿한 생선냄새를 즐길 뿐이었지만, 칠레표 해물탕을 먹고는 벌어지는 입을 멈출 수 없었다.
한국으로 치면 해물뚝배기쯤 되는, 겨우 3500원에 불과한 빠일라 마리나(Paila Marina)는 해삼, 멍게, 새우, 조개, 전북 등 말 그대로 태평양 바다가 통째로 들어가 있다. 한국의 것처럼 얼큰한 맛은 없지만, 적당한 비린 맛과 조미료가 전혀 없음이 분명해 보이는 그 풍부한 맛은 한 번 맛보면 결코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무엇보다 싼 가격에 취한 우리는 전복을 비롯한 갖가지 해산물을 사서 매일 저녁 라면에 넣어 새로운 요리를 시도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산티아고의 물가를 봐서는 전복을 라면에 넣어먹는 사치를 부릴 날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한 번 시작된 식도락은 멈출 줄을 몰랐고, 다음날 우리는 세계 10대 와인 생산국이라는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인 콘차이 토로(Concha y Toro)를 방문했다. 창립자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기린 이 와이너리가 생산하는 와인의 이름은 까시에로 델 디아블로(Casillero del diablo). 칠레의 국민 와인이라더니 이름에 '악마'가 들어간다.
▲ 세계10대 와인생산국 칠레의 국민와인, 까시에로 델 디아블로(Casillero del Diablo). 훨씬 비싼 가격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김동주
칠레에서야 오렌지 주스만큼이나 흔한 와인 중에서도 '국민'이라는 칭호를 얻은 와인의 이름에 '디아블로'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가 재미있다. 농장주가 거주하는 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화려하고 거대한 대저택의 창고에 가득 찬 와인을 훔쳐가는 도둑이 많아지자 주인은 이 창고에 악마가 출몰한다는 소문을 냈다고.
그만큼 맛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에피소드일 테지만, '악마의 창고'라고 이름 붙여진 어두운 저장소의 귀퉁이에서 누군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면 무서울 법도 하다.
▲ 단돈 만원이면 해산물이 가득 들어간 훌륭한 안주와 더불어 와인 한 병을 혼전히 비울 수 있던 그 시절, 우리의 밤은 언제나 와인 잔에 비친 세상처럼 울렁거렸다
김동주
드디어 시작된 시음의 순간. 와인 마니아가 아닌 나는 밸런스나 바디감 같은 전문적으로 와인의 맛을 표현하는 단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지만, 칠레에서는 해산물과 와인이라는 묘한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그 맛을 볼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7천 원으로 맛보는 악마의 속삭임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간략여행정보 |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고 있는 산티아고지만, 아직까지도 와인과 해산물 만큼은 저렴하다. 산티아고의 중앙시장인 메르카도 센트럴(Mercado Central) 에 가득찬 어느 가게에서도 태평양의 풍미를 한껏 느낄 수 있고, 굳이 근교의 와이너리를 방문하지 않아도 동네 슈퍼나 마트 어디에서든 한 병에 5000 ~ 1,0000원이면 훌륭한 칠레 와인을 구할 수 있으니, 산티아고야 말로 주지육림에 빠지기 쉬운 도시다.
산티아고의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산 크리스토발(San Christobal) 언덕은 걸어서는 1시간 정도 걸리는 가파른 언덕이지만 입구에서 왕복하는 셔틀버스가 있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언덕 곳곳에 위치한 다양한 테마파크에 들려보는 것도 좋을 법하다.
아래는 그 외에 산티아고에서 방문할 만한 장소들 아라우코 몰(Parque de Arauco) : 서울에서나 볼법한 현대식 대형 쇼핑몰. 도미니코스 공예마을(Los Dominicos Hand-craft village) : 알려지지 않은 칠레 예술가들의 다양한 수공예품을 살 수 있는 곳. 특히 칠레 원주민을 주제로 한 독특한 작품들은 얼마를 지불하든지 갖고 싶을 만큼 훌륭하다. 물론 무사히 가져갈 수만 있다면.
좀 더 상세한 산티아고 여행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2259560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7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