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2014년 1월 6일 기자회견. 박 대통령 주변으로 각부 장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앉아 있다. 세계의 어느 나라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장관과 비서관 전원을 불러 모아 이런 엄숙한 분위기 하에서 국민들과 소통할까.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박 대통령의 그 막강한 권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청와대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지난 대선 이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부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년간 어떤 대통령보다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여성 대통령의 부드러움으로 국민화합을 기대했다면 그것은 오판이었다. 부드러운 외피를 벗기면 거기엔 세찬 칼바람이 부는 동토의 대한민국이 있을 뿐이다.
그 동토 지대는 우선 정치권에서 목격할 수 있지 않은가.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여권에서조차 왕왕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들이 있었다. 소장파 국회의원 중에는 가끔 연판장을 돌려서라도 청와대와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국회의원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질 않는다. 내게 노안이 와서 잘못 보는 것일까.
거의 모든 여권 정치인들이 완전히 낮은 포복을 하면서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국무회의에 비친 장관들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수첩에 메모하기 바쁜 것 같다. 수첩 공주가 대권에 오르더니 이젠 수첩 대신들만이 눈에 들어온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에서는 대통령의 심기를 거슬리는 어떤 반론도 허용될 것 같지 않은 엄숙함만이 흐른다.
이런 분위기는 정치권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보수언론도 보수적 견해에서 정부 비판을 못 할 리 없지만, 제대로 된 비판이란 것을 본 지 오래다. 지식인의 비판 강도는 전반적으로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자기검열의 위축 효과도 여기저기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서두에서 말한 문예잡지사나 출판사의 원고 거부현상도 그런 예 중의 하나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당 총재가 아니면서도 유신 시절 여당 총재를 겸한 박정희 대통령에 필적하는 권력을 즐기는 듯하다. 가히 부전여전(父傳女傳)이다. 유신 시절이야 대통령의 권력이 국회를 압도하는 것은 형식적이라도 헌법에 의해 보장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헌법은 그렇지도 않은데, 박 대통령 말 한마디는 여당 국회의원들에게 그저 지존의 말씀으로 들리는 것 같다. 헌법개정 없이도 대통령의 권력을 그렇게 막강하게 만든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력은 놀라움을 넘어 신통하기까지 하다.
그러면 그 통치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력은 그의 높은 지지도에 비밀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대선과정에서 국정원 등의 불법선거개입 논란이 지난 1년간 그치질 않았음에도 박 대통령은 50%대의 지지도를 확보했다. 박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안보논리와 경제논리는 한 겹만 벗기만 오류투성이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이 많은 국민에게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단언하건대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꺾이지 않는 한 제왕적 대통령으로서의 박 대통령의 권위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18세 소년 옥타비아누스, 로마를 접수하다오늘날 우리의 정치·사회 현실을 이야기할 때 생각나는 로마인 한 사람이 있다. 로마제국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기원후 14)다. 로마제국의 제1의 권력자로서 후세의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초대황제라 부르지만, 그는 살아생전 결코 자신을 황제라 칭한 적이 없다. 물론 헌법을 바꾸어 로마 공화정을 황제정으로 바꾸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누가 보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 권력을 가진 황제였다. 그것은 로마인의 그에 대한 절대적 지지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 지지의 불가사의는 어디에서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