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7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왼쪽)와 사진을 찍었다.
박상규
"묻습니다. 둘 중 누가 더 젊어 보입니까. 왼쪽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오른쪽은 사원 박상규입니다."
사람들은 솔직했다. "박 기자가 더 잘 생겼다"고 답한 사람은 있어도, 내가 더 젊어보인다는 의견은 없었다. 오연호 대표는 64년생, 나는 75년생이다. 그렇게 나는 사장을 추월한 사원이 됐다.
세상이 말하는 새빨간 거짓말은 또 있다. 뭐, 마흔은 불혹의 나이라고? 세상의 유혹에 더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웃기시네! 나보다 앞서 마흔을 넘긴 선배들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내게 세상은 온갖 유혹 투성이다. 난 여전히 전지현을 보면 '헉!'이 터지고, 바람이 불면 가슴이 떨린다. TV 프로그램 <사랑과 전쟁>을 봐도 불륜 현장의 주인공은 죄다 중년이다.
얼굴만 세월을 앞지르고, 뭐든지 남들보다 늦은 중년이어도 그리 좌절하지 않는다. 언젠가 문득 '아, 나는 남들보다 좀 더딘 사람이구나'하고 깨달은 이후 마음이 편해졌다. 괜히 타인과 비교하지 않아 좋고, 그러다보니 조바심도 적어졌다. 체념과 자기기만일 수도 있지만, 남들보다 먼저 성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은 삶의 여러 국면에서 내게 많은 위안을 줬다.
그런 위안과 긍정 덕분인지, 아니면 유혹에 약한 탓인지, 마흔이 된 지금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세계여행 계획은 코앞으로 다가왔고, 오래 꿈꿨던 내 첫 소설이 곧 출간될 듯하다.(이건 간접 광고로 봐도 된다^^) 남들은 스무살, 서른살에 등단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도 난 그리 부끄럽지 않다. 이미 이야기 하지 않았나. 나는 늘 느리고 더뎠다고.
내가 40대에 이루고픈 꿈은 또 있다. 바로 영화배우다. 영화판에 장동건, 원빈, 조인성, 하정우 같은 배우만 있으면 큰일난다. 그럼 조폭, 똘만이, 양아치, 기둥서방, 노숙인 역할 등은 누가 하나. 나는 훌륭한 '양아치 전문 배우'가 되고 싶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꼭 이루고픈 꿈이다.
언젠가 강원도 깊은 산골의 스님과 차를 마셨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스님이 내 얼굴과 몸을 훑어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책상에 앉아 얌전하게 노트북이나 두드릴 얼굴과 몸이 아닌데... 저 뒷골목에서 술 마시고 기분 틀어지면 싸움질이나 하면서 살면 참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래, 세월을 앞지르고 뒷골목에 딱 어울리는 얼굴을 그냥 묵힐 수는 없다. 이미 15년 전, 내 영화계 데뷔를 충동질한(?) 사람들이 있다. 1999년 가을이었다. 그때 학교에서 모닥불 피고 놀다가 몸에 불이 붙는 사고를 겪었다. 한 선배가 모닥불을 키우기 위해 시너를 끼얹었는데, 그게 내 몸으로 튀었다. 타고난 운동신경 덕분에 빨리 옷을 벗어 큰 화를 면했다.
그래도 나는 119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늦은 밤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는 내 얼굴과 상반신 전체에 흰 붕대를 감았다. 화상 전문 의사가 출근하는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대학병원 규모는 아니었어도 꽤 큰 병원이었다.
다음날 새벽, 간호사가 내 병실로 들어왔다. 간호사는 수술실로 가려면 붕대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간호사는 허리 쪽부터 붕대를 천천히 풀며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