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시대 대표적 사법살인으로 불린 인혁당 사건은 30년이 지난 뒤 무죄가 되었다. 그러나 8명의 주검은 돌아오지 못했다.
동아일보/한겨레 PDF
정권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은 재판이라는 이름 하에 죽어갔다. 이름하여 사법 살인이다. 지난 40년간 인구에 회자된 인혁당 사건을 보라. 유신정권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고문받으면서 사건은 과장 조작되었다. 법원 확정판결이 난 지 단 18시간 만에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렇지만 30년 후 사건의 진상은 밝혀졌고 모두 무죄를 받았다. 권위주의 시대가 우리에게 준 공포치고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김재규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한 독재자에 의해 유린당하는 것을 볼 수 없어 유신의 심장부인 박 대통령을 쏘았다고 한다. 이는 마치 부르투스 일파가 로마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카이사르의 심장을 찔렀다는 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그 암살의 목적은 김재규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카이사르를 살해하였지만 그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시작된 화려한 황제정을 부르투스가 막지 못한 것처럼.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은 민주주의의 회복으로 바로 연결되지 못했다. 또 다른 권력의 화신 전두환의 출현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 뒤에도 십수 년을 기다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을 요구하고 나서야 우리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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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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