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너스인 줄 알았던 봉투 속에는 결혼제안서가.
홍현진
'결혼제안서' 안녕! 오래간만에 글을 쓰려고 하니 시작하는 것도 어렵네. 편지를 자주 써야 하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이렇게 쓰는 게 쉽지 않네. 앞으로는 이렇게 특별한 일이 있을 때가 아니라 평소에도 생각이 나면 한 통씩 써봐야겠다. 손편지는 카톡이나 전화 따위랑은 다르니깐 평소에 전할 수 없던 할 수 없던 말들도 전할 수 있으니깐...앞에 특별한 일이라고 했는데, 사실 오늘은 우리가 연인이 되기로 약속한지 3000일이 되는 날이야(알고 있었니?) 처음 야학을 퇴임하고 너에게 편지로 고백을 하고, 피씨방에서 연락을 기다리던 때에 긴장감이 아직도 생생한데... 3000일이라니... 3000일이라니... (젠장...은 아니지...) 믿기지가 않네. 여기까지 읽고 '헉'했다. 프러포즈 편지를 보너스로 착각한 것도 민망했지만, 오늘이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지 3000일이라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타고난 '숫자바보'인 나는 아직도 '우리가 연인이 되기로 약속한 날'이 2005년 4월 9일인지, 4월 10일인지 늘 헷갈린다(미안하다, 곰씨야).
플라스틱으로 만든 만 원짜리 꽃반지 곰씨와 나는 대학 1학년, 야학 '강학(講學)'으로 만났다(우리가 봉사활동을 했던 야학에서는 교사를 '강학', 학생을 '학강'이라고 불렀다.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친다는 의미다). 곰씨는 나보다 한 학기 먼저 들어와서 '퇴임'도 한 학기 빨리했다. 퇴임식을 하던 어느 봄날 술자리에서 곰씨는 내게 편지 한 통을 건넸다. 3000일이 넘는 기나긴 인연이 시작되던 날이었다.
몇 개월 후 곰씨는 군대에 갔고,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나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곰씨는 군대에서 매일매일 편지를 써서 일주일에 한 번씩 호주로 보냈다. 외롭던 타지 생활에서 곰씨의 편지는 가장 큰 위로였다.
예전부터 3000일이 되는 날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멋지게 너에게 청혼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밖에 못하는 것이 뭐 아쉽기는 한데 미안하지는 않지만(니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한 거야...) 그래도 다들 하는데, 나도 확인 좀 받아놓으려고. 이렇게 껍질 없이 알맹이로만 너에게 확인을 받아보려고 이렇게 편지를 쓴다. "나랑 결혼해줄래." 뭐 다음생애 같은 거 많이 생각해보고 또 믿지도 않고 그 때까지 너와 함께 할게,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죽을 때까지는 너와 함께 할게. 너도 그래줄 수 있겠니? 계속해서 내 삶의 지표가 되는 친구로 남아줄 수 있겠니? 정말 나와 평생을 매일 함께할 수 있겠니? 결혼준비를 하면서 나는 곰씨에게 '프러포즈는 하지 말자'고 거듭 말했었다. 이런 말을 하면 다들 '마음에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만 진심이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혼 날짜까지 다 잡아놓고 따로 또 프러포즈 이벤트를 한다는 게 어쩐지 나는 좀 멋쩍었다. 보통 프러포즈 이벤트는 남자쪽에서 준비한다는데, 이것도 나는 잘 이해가 안 갔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는 이미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생각한 날이 있었다. 올해 초봄이었던가. 당직을 마치고 곰씨와 만났는데 곰씨가 꽃을 들고 나타났다. '꽃 선물 받고 싶다'고 무심코 했던 말을 기억한 것이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공덕동 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몇 번이나 꽃을 들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널 사랑하는 평생의 친구가'로 끝나는 편지를 읽으며 눈물 많은 나는 또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곰씨는 '반지를 준비했다'며 플라스틱으로 된 만 원짜리 꽃반지를 꺼냈다.
"내가 너한테 처음 사줬던 귀걸이랑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서 샀어. 이거 세수할 때 끼거나 너무 자주 끼고 다니면 안 돼. 녹슬어(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