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일 후 밭에 앉아 먹는 식사는 역시 맛이 다르다.
조남희
나와 동거를 시작한 그녀 또한 '모든 건 적응하기 나름'이란 걸 터득한 걸까. 육지와 달리 제주도에 마른 장마가 계속되면서 벌레가 한결 줄어들기도 했지만, 보름만에 전기 파리채로 말 없이 집안의 모든 벌레를 해결하는 능력자가 된 그녀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그래서 이제 내가 외친다.
"유라야, 여기 벌레!"그녀는 심지어 혼자 나갈 일이 있을 때 버스시간이 맞지 않으면 엄지손가락을 들어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기도 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웃집 어르신들이 육지에서 온 젊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 우리 집 사람들이 어르신들에게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이사를 들어오기 전에 장사가 워낙 잘 되던 공간이라, 공사기간 내내 주민들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여기 무슨 장사할 거예요?"라는 질문이 매일 쏟아졌다. "저희는 그냥 이 마을에서 살러 왔어요"라고 답을 해도 도통 믿지 않는 눈치였다.
밭일을 하고 얻어온 삼채를 다듬어 들고 이웃집 어르신들에게 가자 달달한 냉커피를 내오셨다. 이후 60년을 이 마을에서 사신 어르신의 '레알 마을 스토리'가 이어졌다. 어느 집 인심이 사나운지, 브로콜리 농사를 지었는데 가격이 맞지 않아 죄다 내다 버려야 하는 등등의 이야기였다. 염치없지만 머릿속엔 '앞으로 브로콜리는 사먹을 일이 없겠군'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다음엔 한라산 소주 몇 병 들고 올게요~"라면서 자리를 뜨자 할아버지가 미소를 감추지 못하신다.
어느날은 집 앞에 커다란 호박 두 덩이가 놓여져 있기에, '이게 웬 굴러 들어온 호박이냐' 싶었는데 옆집 할머니가 놓고 가신 거였다. 알고 보니, 집주인인 나 모르게 '여자1호'가 옆집 할머니에게 수박을 갖다드리고 왔단다.
다음 달에 들어온다는 여자2호가 벌레를 보고 소리를 지르면, 나는 조용히 밭일을 시킬 생각이다. 그때는 세 여자가 젊은이는 없고 박물관만 많은 이 마을에서 어르신들이 타주는 달달한 냉커피를 얻어 마시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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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에 기겁하던 여자 1호, 보름 지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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