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백화점에서는 직원이 머리가 희끗할 때까지 일하는 것과 매장 안에서 판매원이 앉을 수 있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빨리 이뤄질까. 사진은 한 백화점 메이크업 브랜드 화장품 판매 코너의 모습.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제대로 앉아 쉴 수도 없다.
김지현
그나저나 마흔이 자꾸 손짓하는 것 같아 달력 보기가 겁나는 내가 막내라니…. 백화점 직원들의 연령분포도가 이상한 것 아닐까. 백화점에서는 파는 상품에 따라 직원들의 연령대가 정해졌다.
여성복 매장의 상당수는 40~50대였다. 직원 화장실에 붙은 캐주얼 매장 '막내' 모집 공고는 '25세 이하의 여성'을 찾고 있었다. 화장품 매장도 30대가 넘으면 들어가기 힘들어 보였다.
취업 둘째 날 백화점 교육을 받을 때 옆에 앉은 40대 언니가 1층에서 일한다고 하기에 "화장품매장이요?"라고 물었다가 당치도 않은 소리한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우리 층만 보고 백화점에 중년 여성들이 많다고 착각할 뻔했다.
최근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겠다고 했는데 이제 백화점에도 30대 이상 여성의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려나.
늘어나더라도 하루 10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기에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정부가 말하는 대로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날까. 전일 근무를 해도 월급이 100만 원 조금 넘는데 시간제면 60~70만 원 받고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과연 그걸로 생활이 될까. 자꾸 정부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목표치 달성이라는 숫자놀음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나는 역시 삐딱이인가 보다.
혜수 언니가 일본에 갔다가 백화점에서 받았던 인상을 얘기한 적이 있다.
"내가 백화점에서 일하니까 일본 백화점은 어떤가 궁금해서 가봤어. 매장에 들어가니까 의자에 앉아있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일어서서 응대를 하더라고. '아, 여기는 나이 들어도 일할 수 있구나,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대학 졸업반 때 결혼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야 사회생활을 시작한 혜수 언니. 지인이 백화점 일을 권했다고 한다. 별 경력이 없어도 할 수 있다고. 10년 넘게 일했고 자기 매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판매의 베테랑이다. 그러나 50대의 그가 2년 가까이 일을 쉬고 다시 일을 구할 때는 이력서를 낼 곳이 많지 않았단다. 백화점에서도 부인복 브랜드나 가능했지만 그마저도 일자리가 가물에 콩 나듯 했다.
게다가 캐주얼 브랜드와 명품만 판매했던 혜수 언니에게 마담 스타일은 자기 취향이 아니었다. 취업 포털에 캐주얼 브랜드의 채용공고가 뜨면 이력서를 보내는 대신 전화를 걸었다. 매장 매니저가 나이를 물으면 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이는 많지만 만나 보면 마음에 드실 거예요." 그렇게 해서 면접을 보게 되면 정말로 매니저가 흔쾌히 출근하라고 했단다.
자기 일에 대한 자긍심이 없이는 부리기 힘든 배짱이다. 그만큼 언니는 일을 잘했다. 그런데도 언니는 자신의 나이를 부담스러워했다. 나만 보면 말했다. "너는 젊으니까 뭐든 할 수 있어." 그 말 뒤에는 '나는 이제 나이 들어서 안 되지만…'이 생략돼 있었다. 누구보다 판매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언니에게서 듣기에는 서글픈 말이었다. 그때마다 상상했다. 돋보기 안경을 걸친 채 매장에 앉아 있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혜수 언니를…. 그런데 한국 백화점에서는 직원이 머리가 희끗할 때까지 일하는 것과 매장 안에서 판매원이 앉을 수 있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빨리 이뤄질까라는 궁금증이 발동했다.
백화점에서는 '모니터링'이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