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불라페우팅게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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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대에 따라 달랐겠지만, 적어도 로마제국의 황금기였던 오현제 시대에는 이 가도가 대단히 안전하게 운영되었음이 기록에 남아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이야기다. 알다시피 이 황제는 오현제 중 세 번째 황제인데 살아 있는 동안 로마에 있었던 시간보다 제국을 순행한 시간이 더 많았다.
지금도 지중해 연안 곳곳에서 이 황제가 다녀갔음을 알리는 흔적을 볼 수 있는데(대표적인 것이 하드리아누스 문이다), 이 황제는 어떤 방법으로 돌아다녔을까. 당연히 그도 로마가도를 이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이 황제는 제국을 순행할 때 황제의 위엄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수백 명의 로마군단을 대동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최 측근 몇 명만 데리고 단출하게 다녔다고 한다. 로마가도에 수시로 강도가 나타나 인명을 살상하고 물건을 강탈하는 일이 발생했다면 어찌 제국의 황제가 그리 다녔겠는가. 그만큼 로마가도는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었다는 말이다.
로마가도에서 얻는 교훈... "성장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야"여기서 한 가지 잊어선 안 될 것이 있다. 지난 번 실크로드 기행문을 쓰면서 한 이야기인데, 재탕 같지만 한 번 더 말하고 싶다. 속도에 관한 이야기다. 속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곧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것을 물리학에서는 엔트로피 증가법칙이라고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 문명이 속도를 극한으로 높이면 결국에는 그 문명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고갈되고, 그로 말미암아 그 문명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토록 찬란했던 로마문명이 종언을 고한 것이 바로 로마가도가 만든 비극(물리학적 귀결)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로마가도가 물류의 속도를 너무 높여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고갈로 이어졌고, 이것으로 로마제국은 급속도로 힘이 빠져 결국 이민족의 침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나만 생각해 보라. 로마가도는 혈관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핏줄이 막혔다고 가정해 보라. 몸 전체가 죽는 것은 시간문제다. 로마의 물질문명 이면에는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혈관과도 같은 로마가도가 막히는 순간, 로마제국 전체가 곧 마비되었다는 말이다. 아니, 막히지 않았다고 해도 로마제국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급속도로 고갈되었을 것이다.
로마가도는 필연적으로 로마에게 과도성장의 대가를 치르게 하였다. 로마가도라는 빠른 운송수단을 확보하자 제국의 수도 로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로마가 한참 흥성할 때는 인구가 이미 백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현대 도시에서 백만 인구야 중소 도시에 불과하지만 고대도시에서 백만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인구이다.
한 도시에 인구가 과잉일 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문제점을 만들어낸다. 도시의 우범화, 슬럼화가 일어날 뿐만 아니라 물자가 부족할 때는 삽시간에 인플레가 일어나 민심이 흉흉해 진다. 그러니 로마가도가 막혀 물자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을 때를 상상해보자. 끔직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수많은 이민족이 뒤섞여 사는 로마는 곧바로 패닉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로마가 망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류문명적 차원에서 볼 때 인류가 만든 이 빠른 속도의 길과 그것이 가져다 준 빠른 성장이 항상 좋다고만 할 수 없는 일이다. 과도 성장이 가져다주는 폐해는 쉽게 고칠 수 없는 근본적 문제를 야기한다. 큰 것이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때론 작은 것이 아름다운 법이다. 인류가 걷거나 기껏 우마차 정도를 이용했던 수 천 년 동안은 에너지 고갈을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 200년 밖에 안 된 지금, 우리는 에너지의 고갈을 걱정한다. 인류가 지난 두 세기 동안 무척 빠르게 성장한 대가다. 인류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현대 문명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빠른 길을 만들고, 너무 급하게 성장해 온 것이 결국 인류 문명의 종언으로 이어지는 부메랑이 되었다는 것을 뒤 늦게 깨닫게 될 것이다.
로마제국이 지속됐으면, 우리 문명도 바뀌었을 것이런 데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제레미 리프킨의 초기 저작 <엔트로피>를 꼭 한 번 읽어 보시라. 문명의 변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물리적 법칙(그 중에서도 에너지 법칙인 엔트로피)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