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한국에 온 TT가 지인과 식사를 하며 해후를 즐기고 있다.
고기복
불량학생, 이주노동자 되다T는 파란만장하다는 말 한마디로 다 설명하기에 부족할 정도의 굴곡 많은 인생을 산 사람이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사귀던 여자 친구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겨서, 부인은 고교 중퇴를 하고, 아이는 장인어른 앞으로 출생신고를 해야 했다. 한 마디로 이름 꽤나 날리던 불량학생이던 T는 우여곡절 끝에 졸업은 했지만, 변변한 직장 없이 기계공으로 몇 년을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다가, 한참 붐이 일던 한국으로의 이주노동을 결심하게 된다.
T가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했을 때는 한국이 IMF를 겪고 있던 때였다. 정상근무를 한다고 했을 때, 출국 전에 들인 돈을 갚는데도 빠듯했다. 그렇지만 3년 동안 매일매일 잔업과 야근, 특근을 도맡아 하면서 송출비용을 다 갚고, 고향에 밭도 사고, 집도 지을 준비를 마쳤다.
산업연수생으로 2년을 일하고 난 뒤에는 일시 귀국하기도 했었는데,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부인이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양할 가족이 한 명 더 생겼다는 사실에 책임감을 느낀 T는 산업연수생 계약이 만료된 후, 귀국해야 할 즈음에 사측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게 된다.
일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는 T를 눈여겨 보아왔던 사장이 출국하지 말고, 회사에서 계속 일하라고 권한 것이다. 그 제안을 받고 T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부인에게 한국에서 조금만 더 일하겠다고 전달한다. 그러자 부인은 "어서 돌아와요. 당장 귀국하지 않으면 도망가 버리겠어요"라면서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T는 결국 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해서 T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미등록이긴 했지만, 산업연수생으로 3년을 일했던 회사였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고, 예전과 다를 바 없이 매달 송금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미등록으로 2년을 더 일한 T는 계획했던 집이 완공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하루 빨리 귀국할 것을 요구하는 부인의 말대로 귀국을 하려고 했다. 문제는 5년간의 행복했던 순간을 뒤로 하고, 귀국을 결심할 즈음부터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T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임금체불과 이어진 불행T가 5년간 열심히 일했던 회사는 핸드폰 케이스를 제작하는 중소업체였는데, T가 귀국 준비를 시작할 즈음부터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임금체불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귀국일자를 정한 T에게 회사 사장은 "회사가 이렇게 어려운데 귀국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냐, 내가 너에게 얼마나 잘해 줬는데… 회사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조금만 더 일해 달라"고 하면서 귀국을 미룰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조금만 참아주면 밀린 급여와 퇴직금을 다 지급하겠다고 각서를 쓰며 약속한다. 그러자 T는 회사 경영이 나아지기를 기대하면서 귀국일정을 잠시 뒤로 미루게 된다.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귀국 일정을 미룬 지 얼마 되지 않던 날, 출입국 단속반이 회사에 들이닥쳤고, 사장의 지시로 2층에서 뛰어내려 도망가던 T는 왼쪽 복숭아뼈가 다 으스러지고 오른발은 깁스를 해야 할 정도의 큰 사고를 당한다.
사고 당시 왼발바닥이 20㎝ 정도 벗겨졌는데, 응급처치가 늦어 지방 성분을 다 제거해야 했다. 그 결과 회복된 뒤에도 T는 예전처럼 운동을 하는데 상당한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게 2005년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