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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의 권위는 로마법 이래 법률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사회라면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의 법률가들에게는 세계의 법률가 일반에게서 볼 수 없는 보편적 권위 이상의 독특한 특권의식이 존재한다. 이것은 로마법으로도, 서구의 어떤 법률가 제도로도,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한 마디로 신기한 문화현상이다.
문명이야기를 하면서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주요한 원인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고 생각한다. 그 하나는 오랜 기간 지속된 관존민비의 유산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시민사회의 힘과 관의 힘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권력은 여전히 비대하고 무서운 존재다. 그러다 보니 권력은 사람들에게 두렵지만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법률가는 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특권의식을 갖게 된다.
둘째는 일제 식민통치와 해방 이후 지속된 기나긴 독재의 유산이다. 일제는 한반도를 통치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고등 협력자로 법률가를 키웠다. 당시 일본의 고등문관시험(그 중에서도 사법과) 합격자들은 조선인 중에서는 최고의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 보다는 못하지만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자들은 나름 엘리트로서 엄혹한 시대에서도 상대적인 자유와 부를 누렸다. 이들이 모두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사법의 중추인 판검사, 변호사가 되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법률가들은 독재자의 폭정을 법치주의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면서 권력과 부를 누렸다. 여기에서 법률가들의 특권의식은 독버섯처럼 자랐고, 그것의 폐단을 아직도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 법률 전문가를 만들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로마법을 알아보자. 우선 로마시대에도 오늘 날과 같은 법률가, 예컨대 변호사 제도가 있었을까. 현대의 법률가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법률가가 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통상 다년간의 법학교육이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만 법률가(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법률가 단체에 소속되어 그 단체의 감독을 받는다.
이런 법률가 제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놀랍게도 이러한 제도는 이미 로마에서 2천 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러니 오늘날 법률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로마인의 후예라고 불러도 과언은 아니다.
원래 서양 법률가의 시초는 그리스나 로마 모두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말을 대신 해주는 변사(orators)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로마는 그리스의 변사 수준을 넘어 이들을 전문적으로 교육시켜 법률가(lawyer)라는 특별한 전문가 집단을 만들었고 그것을 성직자, 의사와 함께 3대 프로페셔널의 하나로 만들었다.
로마에서는 일찍이 법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여 재판 등에 도움을 주는 법률 주석가(juris consulti)가 나타났는데 이들은 단순히 말재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법률교육을 받은 자들이었다. 기원 후 1세 초반 당시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공식적으로 법률가 집단을 인정하고 그들에 대한 보수 금지를 풀어 버리는 조치를 취한다.
오현제 시대를 지나면서 법률가 집단은 보다 견고한 단체로 성장하였고, 로마가 동서 로마로 분열된 4세기 이후 동로마에서는 이미 변호사회라고 불릴 수 있는 법률가 단체가 만들어졌으며, 변호사들은 이 단체에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했다. 현대의 변호사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키케로 어떻게 부자 변호사가 되었을까이쯤에서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 보자. 돈 문제다. 변호사는 로마시대에도 돈을 잘 벌었을까? 결론적으로 돈 잘 버는 변호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과는 사정이 상당히 다르다. 로마법은 원래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보수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주질 않았다. 의뢰인이 변호사의 노고에 대해 고마운 마음에 주는 사례금은 가능했지만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수임료를 청구할 수 없었다. 아니 수임료는 금지되었다.
이것은 로마가 제정으로 들어가기 200년 전에 만들어진 법에 의해 확립된 원칙이었다. 왜 그랬을까. 절박한 처지에 있는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변호를 하는 것은 정의의 원칙에 반한다고 생각해서일까.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해 보면 변호사가 돈을 매개로 일하게 되면 정의가 왜곡된다는 관념이 분명히 존재했던 것 같다. 그러니 변호사의 업무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즘 의뢰인들이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하고 '변호사를 샀다'는 표현을 곧잘 하는데, 이런 말은 로마법의 전통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로마의 변호사들은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카이사르의 정적 중의 하나였던 키케로(기원전 106~43)에 대한 이야기다. 키케로가 누구인가. 그는 최고의 수사가이자, 최고의 문장가로 일찌감치 변호사로 명성을 날렸다. 그리고 마침내 최고 권력자인 집정관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돈도 잘 벌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당시는 법률로 변호사의 보수가 금지되어 있었던 시절인데 키케로가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