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한종선씨가 그린 그림들.
문주출판사 제공
검찰 지휘부는 '수사 방해'하고, 법원은 감금죄에 '면죄부' 주고김 전 검사의 집념 어린 수사로 불법감금과 국고보조금 횡령 등 부산형제복지원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를 바탕으로 검찰은 1심 재판에서 박 원장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6억여 원을 구형했다. 김 전 검사가 염두에 두고 있던 '징역 20년과 벌금 11억여 원'보다 축소된 구형량이었다. 이는 당시 검찰 지휘부의 '명령'에 따른 결과였다. 이미 수사 과정에서 이루어진 이들의 '수사 방해'는 도를 훨씬 넘어선 상태였다.
"폭행치사, 여성 성추행 등을 조사하기 위해 대규모 수사팀을 꾸렸다. 경찰 인력을 지원받아 30여 명으로 구성된 조사반을 편성한 뒤에 타자기를 하나씩 들려서 복지원에 보냈다. 그리고 나서 부산지검에 허락을 받으러 갔는데 허락해주지 않았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인데 지휘부는 조사를 승인해주지 않았다. 당시 부산지검장은 박희태(전 국회의장)였고, 차장검사는 송종의(전 법제처장)이었다."김 전 검사는 이를 두고 "검찰 상층부는 수사 방해조직이다"라며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의 경우에도 대검 중수부장이 수사 방해의 첨병으로 뛰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그런 속에서도 1심재판에서는 징역 10년과 벌금 6억여 원이 선고됐다. 하지만 1차 항소심에서는 벌금형이 사라진 채 '징역 4년'으로 대폭 감형되더니 2차 항소심에서는 '징역 3년'을, 3차 항소심에서는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렇게 항소심이 세 차례나 열린 것은 두 차례의 상고심(대법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988년 3월에 열린 1차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문제가 된 울주작업장의 기숙사 시설은 부랑인 선도와 보호를 목적으로 야간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것인 만큼 불법이 아니다"라며 "이는 사회적 비난과는 별개로 정당한 직무수행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조차 인정했던 '불법감금죄'를 인정하지 않고 사건을 다시 대구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1차 상고심에는 김용준 후보자가 관여하지 않았다.
이에 대구고등법원은 "울주작업장의 기숙사 시설은 원래 다른 곳에 있었으나 현재의 장소로 불법 이전된 것이라서 감금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거듭 '불법감금죄'를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988년 11월에 열린 2차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불법감금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보호 목적으로 부랑인들을 울주작업장에 수용한 것은 정당한 직무수행행위이고, 야간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취침중 출입문을 잠근 것은 형사상 감금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장이 김용준 후보자였다.
이로써 야만적인 5공 정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부산 형제복지원사건은 허약한 사법부의 정의 앞에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보호한다고 감금? 그것은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사건이 일어난 지 26년이 지난 지금도 김 전 검사는 두 차례(1·2차 상고심)에 걸쳐 감금죄를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에 분노했다. 그는 "나는 대법관을 믿지 않는다"라며 "그들에게 인권은 잠꼬대와 같은 얘기다"라고 비판했다.
"형제복지원의 철문은 공고했다. 출입문 자체가 철옹성이었다. 숙소 안에서 잠그고, 밖에서도 잠갔다. 그리고 개패듯 구타하고 죽이기도 했다. 도대체 이것이 감금죄가 아니란 말인가? 법원은 정권의 시녀였다."김 전 검사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시설에 감금할 수 있는 경우는 구속영장에 의한 것과 정신분열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가두는 것 두 가지뿐이다"라며 "하지만 형제복지원의 수용자들은 본인 의사에 반해 시설에 붙잡혀 있었는데 왜 이것이 감금에 해당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옛날에는 '보호'라는 용어를 많이 썼다. 윤락녀나 부랑인들을 '보호'한다며 유치장이나 시설 등에 가두었다. 하지만 그것은 보호가 아니다.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하다. 후진국일수록 '보호'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감금한다. 그것은 분명히 불법행위인데도 '보호'라고 정당화한다."그런 점에서 부산 형제복지원사건의 대법원 판결은 "불법구금을 보호라고 법적으로 인정해준 것"이었다. 감금을 통해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중대한 문제인데도 법원은 감금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전 검사는 "형제복지원사건에서 핵심적인 죄는 감금죄와 국고보조금 횡령죄다"라며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감금죄인데 우리 법원은 그것을 합법적이라고 말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형제복지원사건 판결은 사회적 정당성을 잃은 판결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용준 후보자가 재판장으로 있던) 2차 상고 때 대법원이 1차 상고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전원합의부에 회부하면 된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1차 상고심을 바로잡지 않았다. 이는 2차 상고심 재판부가 1차 상고심 결과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했다는 얘기다."흥미로운 사실은 박인근 원장을 변론한 변호사가 대법관 출신이었다는 점이다. 전상석(2001년 별세) 전 대법관이 변호사를 개업(1986년)한 지 얼마 안 돼 박 원장의 변론을 맡은 것이다.
"원래 검찰과 1심 재판부가 내린 벌금은 6억8000만 원이었는데 1억 원으로 줄었다. 그러면 감금죄를 무죄로 만들어 준 대가로 변호사가 (수임료 등으로) 얼마나 많이 받았겠나?"